칼럼

에이주릭스(물 회사)의 교훈

작성일 : 2008-09-29 09:16조회 : 1,749

‘에이주릭스’의 교훈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1. 엔론

2001년 말에 파산한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Enron)은 미국 사상 최대의 회계 스캔들이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에너지 회사라고 칭찬을 들었던 이 회사는 손실을 축소 은폐하고 이익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회계부정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블루칩이었던 엔론의 주식은 하루아침에 휴지가 되었고, 수천 명의 화이트칼라 직원이 직장을 잃어버렸다. 이들은 범죄기업에 동참했다는 오명(汚名)을 쓰고 자신의 캐리어를 망쳐 버렸다. 그런 와중(渦中)에서도 고위 임원들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내다 팔았던 것으로 밝혀져 투자자들의 분노를 샀다.

엔론의 회계를 담당했던 굴지의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Arthur Anderson)은 더러운 음모에 가담했던지, 이런 거창한 음모를 눈치채지 못한 무능한 회계법인으로 낙인찍혀서인지, 같이 파산하고 말았다. 엔론의 임원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공화당 정치인들에게 많은 헌금을 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원칙대로 사건을 처리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엔론의 파산에는 수도사업 진출도 한 몫을 했다. 에너지 사업이 예상한 대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자 초조해진 엔론은 수도사업에 희망을 걸었다. 엔론은 수도사업도 민영화가 대세이며, 물도 전기나 가스처럼 저장했다가 판매하는 등 거래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줄로 알았다. 그러나 수도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엔론은 참담하게 실패해서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2. ‘에이주릭스’

엔론은 물 사업을 하나의 돌파구로 생각했다. 엔론의 경영진은 대부분 공공섹터가 관장하는 미국의 수도사업이 궁극적으로는 민영화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서 투자하면 큰 이익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1997년에 미국 정부는 세법(稅法)을 개정해서 수도사업 장기위탁계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1998년 초 엔론은 물 사업을 하기 위한 지주(持主)회사로 에이주릭스 회사(Azurix Corp.)를 세우고 본부를 휴스턴에 두었다. 에이주릭스는 곧 상장을 해서 8억 달러를 공모주로 조달했다. 전체 주식의 35%는 엔론이 소유했다.

에이주릭스는 1998년 7월 영국의 웨섹스 워터(Wessex Water)와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수도시설 일체를 현금 24억 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웨섹스 워터는 영국의 남서 지역의 수도사업을 관장하는 공사였는데, 영국정부의 수도 민영화 정책에 따라 1989년에 민영화된 사기업이었다. 물 사업에 경험이 없는 엔론은 웨섹스를 인수함으로써 영국의 서남부 지역의 수도사업자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후 다른 나라의 수도사업에도 뛰어들 계산이었다.

3. 영국의 웨섹스 워터

인수 당시 웨섹스는 영국의 물 사업자 중에는 수익성이 가장 좋은 회사로서, 1997년 한해에 매출 4억 3600만 달러에 이익 2억 3200만 달러를 올렸다. 그러나 에이주릭스는 웨섹스 워터가 소유하고 있던 수도시설이 노후해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영국의 수도사업 규제기관은 에이주릭스에 대해 2000년 4월부터 수도요금을 12% 인하하라고 명령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에이주릭스는 그들이 수십 억 달러 규모의 시설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됐다. 2000년 말까지 에이주릭스는 웨섹스 워터의 운영에서 1억 달러의 이익을 보았지만, 시설투자로 인해 20억 달러의 부채를 안게 되었다. 1998년 회사 설립 후 상장 당시 에이주릭스의 주가는 22달러였으나 2000년 말에 주가는 2달러로 폭락하고 말았다. 주가가 폭락하자 소액 투자자들이 사기성이 있다면서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해서 주가를 더 떨어뜨려 에이주릭스의 주식은 사실상 휴지가 되고 말았다.

4. 아르헨티나

에이주릭스는 남미가 수도사업의 큰 시장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1999년 6월에 에이주릭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3개 지역 250만 명에게 물을 공급하고 하수를 처리하는 수도사업을 30년 간 운영하기로 하는 양허(讓許)계약을 체결했다. 인구가 많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프랑스의 물 회사인 수에즈가 운영하고 있었고, 에이주릭스가 사업권을 따낸 그 주변지역은 많은 시설투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에이주릭스는 이 계약을 따내는 데 4억 3800만 달러를 지급했다. 에이주릭스는 첫 5년 동안 이 지역의 수도공급률을 52%에서 82%로, 하수처리률은 38%에서 68%로 향상시키기고 약속했다. 하지만 재정상황이 나빠진 에이주릭스는 필요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 수돗물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지방정부는 지방정부대로 불만을 표시했다. 주민들은 시위에 나섰고, 지방정부는 에이주릭스에 대해 수돗물을 안전한 수준으로 공급할 때까지 먹는 물을 별도로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수도요금을 징수하지 말도록 명령했다.

에이주릭스가 지방정부의 명령이 계약에 배치된다고 반발하자, 2000년 12월 지방정부는 벌금 25만 달러를 에이주릭스에게 부과했다. 에이주릭스는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자 2001년 주지사는 양허계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들어서도 에이주릭스는 제대로 물을 공급하지 못해서 두 차례에 걸쳐 벌금 50만 달러를 부과 받았다. 2001년 10월 에이주릭스는 수도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2002년에 계약은 파기되었다. 에이주릭스는 지방정부가 약속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세계은행의 투자분쟁해결센터에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투자분쟁해결센터는 에이주릭스가 요청한 6억 2000만 달러의 청구 중 1억 5600만 달러만 인정했다. 에이주릭스는 아르헨티나에서 2년 동안 5억 달러 이상을 잃어 버렸다.

5. 가나

지난 1999년 세계은행의 권고를 받아들여 가나 정부는 수도인 아크라의 수도사업을 민영화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국제입찰에 부쳤다. 프랑스의 수에즈와 비방디, 그리고 에이주릭스가 응모했는데, 후발주자인 에이주릭스가 사업권을 따냈다. 수에즈와 비방디가 배후에 뇌물이 오고갔다고 주장해서 세계은행이 조사를 했다. 수에즈와 비방디는 에이주릭스가 500만 달러 규모의 뇌물을 가나의 공무원들에게 뿌렸다고 주장했다.

세계은행의 조사관은 부패의 징조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결국 세계은행은 공여하기로 했던 1억 달러를 취소해 버렸다. 결국 사업 자체가 취소되어 버렸고, 에이주릭스는 무능할뿐더러 비리에 물든 회사라는 이미지를 안게 되었다.

6. 미국

에이주릭스는 미국에서도 물을 상품화하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물 사업에 뛰어 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플로리다에서는 에버글레이드 국립공원 늪지의 물을 저장해서 상품으로 판매하려는 아이디어를 갖고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했지만 엔론 자체가 파산하는 바람에 로비 자금만 날리고 말았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제브 부시였다. 부시 주지사는 에이주릭스와 직접적 관련을 없었지만 그의 가까운 각료가 에이주릭스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플로리다 주정부가 에이주릭스가 제시한 프로젝트를 제대로 검토하기도 전에 엔론이 파산한 것이 공화당에겐 다행이었다.

에이주릭스는 캘리포니아 주(州)의 마데라 랜치에 13,600 에이커의 땅을 사서 그 땅 아래에 있는 지하수대의 물을 갈수기에 팔기 위한 구상을 했다. 그러나 지역농민들의 반대에 봉착해서 아무런 사업도 하지 못하고 파산을 맞았다.

7. 종말과 교훈

2001년 4월, 엔론은 에이주릭스의 자산을 사업단위로 매각하고 물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하수처리 등 사업이 남아있던 북미 지역은 아메리칸 워터 웍스(American Water Works)에 1억 4500만 달러에 매각했다. 영국의 웨섹스 워터는 말레이시아의 전력회사에 매각됐다. 2001년 말에 에이주릭스의 모기업인 엔론이 도산했고, 최고경영자들은 구속되어 유죄판결을 받았다. 엔론 뿐 아니라 에이주릭스에 몸을 담았던 선량한 직원들은 직장을 잃어 버렸다. ‘사기회사’에서 일했다는 경력 때문에 정상적인 취업을 다시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에이주릭스의 실패는 수도사업을 민영화한다는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준다. 수도사업은 아무나 하는 사업이 아니거니와, 대단히 위험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민영 수도사업은 인구가 100만 정도는 되는 도시를 대상으로 해야 규모의 경제를 맞출 수 있음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어떤 기업이 별안간 수도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면 우선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권력과의 유착(癒着)이 있지 않는 한, 새로 시작하는 회사가 수도사업에서 수익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첨단환경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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