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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린지 (1921~2000)

작성일 : 2022-03-24 09:21조회 : 1,274

존 린지 (John Lindsay 1921~2000)

서울신문 3월 14일자 <1970년 미국> 세 번째 기고 ‘격동의 1969년’에는 그 해 10월 15일 베트남 전쟁 반대 모라토리엄 시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날의 반전 시위는 워싱턴은 물론이고 뉴욕 등 큰 도시에서 동시에 열렸다. 뉴욕에서 열린 시위에선 당시 뉴욕 시장이던 존 린지가 시위군중 앞에서 나와서 격려하는 발언을 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의 시장, 그것도 공화당 시장이 반전(反戰) 시위를 격려한 것이다.

존 린지는 1966년 1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8년 동안 뉴욕 시장을 지냈다. 린지는 이미 병든 뉴욕시를 완전히 망쳐 버린 시장으로 평가되며, 시장을 그만두고 난 후 정치적으로 재기하지 못했고 말년은 불우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서 존 린지를 다루었던 던 스티븐 와이스먼(Steven Weisman)는 린지의 임기 말인 1972년에 린지가 “관료를 적절하게 움직일 줄 몰랐고, 상대방의 이기심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날로 확장돼가는 정부를 관리하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함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린지의 1기 임기 동안에는 린지를 지지하고 크게 다루었으나 1970년대 들어서는 실망해서 린지를 보도하기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린지의 야망과 좌절은 진보 정치와 진보 정책의 좌절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이기에 몇 번에 걸쳐서 그에 대해 써 보려 한다.

존 린지는 1921년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중상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변호사이자 금융인이었고, 린지는 사립고교와 예일대를 다녔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 장교가 되어 실전을 겪었다. 전후에 예일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변호사가 되어 일하면서 아이젠하워 장군을 대통령으로 지지하는 젊은 공화당원 모임을 주도했다.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자 법무부에서 일한 후 1958년에 맨해튼의 부유한 이스트사이드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원의원으로 린지는 존슨 행정부가 추진한 주택도시개발부 신설 등 ‘위대한 사회’ 정책을 지지하는 등 공화당의 기조와는 달리 진보적 성향을 보였다. 키가 크고 인물이 좋으며 예일대를 졸업한 린지는 ‘공화당의 케네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목을 샀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자 실망한 린지는 골드워터를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린지 뿐 아니라 뉴욕 출신 상원의원 제이컵 재비츠(Jacob Javits 1904~1986) 등 동부의 공화당 의원들이 보수적인 골드워터를 지지하지 않아서 골드워터는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했다. 뉴욕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외에도 뉴욕 보수당(The Conservative Party of the State of New York)이 1962년에 생겨났는데,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 뉴욕 주지사 등 뉴욕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진보적이어서 보수 유권자를 대변할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65년 들어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에 미군 병력을 대거 증강시키고 전쟁을 확대시키자 린지는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린지는 베트남 전쟁을 초기부터 반대했던 몇 명 안 되는 의원 중 한 명이었다. 자연히 린지는 자기가 속한 공화당과 괴리감을 느꼈다. 하원의원 4선을 기록한 린지는 다음 행보를 생각하게 됐다. 록펠러 지사나 재비츠 상원의원은 임기가 남아 있고 은퇴할 기미가 없기 때문에 린지는 뉴욕시장 선거를 생각하게 됐다. 린지는 자기가 뉴욕 시장이 되면 재정 치안 등 모든 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뉴욕시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린지는 자기가 선량한 의도를 갖고 뉴욕시를 움직이면 인종 갈등 등 뉴욕시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존 린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보수 평론지 <내셔널 리뷰>를 펴내는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 1925~2008)였다. 부유한 석유 사업가의 아들로 맨해튼에서 태어난 버클리는 2차 대전 중 육군 장교로 근무했고 전쟁이 끝난 후 예일대를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펴낸 <예일대의 신(神)과 인간>으로 유명해진 버클리는 미국의 지적 분위기가 잘못 나가고 있다면서 보수 평론지 <내셔널 리뷰>를 창간했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버클리는 그의 매부(妹夫)인 브렌트 보젤(Leo Brent Bozell Jr.1926~1997)과 함께 골드워터를 도왔다. 골드워터의 스피치라이터를 지낸 보젤은 골드워터가 1960년에 펴낸 <보수주의자의 신념>(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의 실제 저자(ghost writer)이기도 하다.

버클리는 린지가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린지가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자 코네티컷에 살던 버클리는 뉴욕시로 주소를 옮기고 뉴욕 보수당 후보로 시장 선거에의 출마를 선언했다. 11월 2일에 치러진 선거에서 공화당은 린지, 민주당은 뉴욕시 감사관이던 에이브 빔(Abe Beame 1906~2001), 그리고 뉴욕 보수당은 버클리를 후보로 내세웠다. 린지는 45%를 얻어서 41%를 얻은 빔을 누르고 당선됐다. 버클리는 13.4%를 얻는데 그쳤다. 같이 치러진 뉴욕시 감사관과 시의원 의장 선거에선 모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인 뉴욕시에서 20년 만에 린지가 공화당 후보로 10만 표를 이겨서 당선되자 린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대통령 감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린지는 젊은 참모들을 대동하고 독자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는데, 맨해튼과 퀸스 그리고 스태턴 아일랜드에서 승리했다. 에이브 빔은 흑인들이 많이 사는 브롱크스와 브루클린에서 이겼으나 린지와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린지는 진보적 공약을 내세우고 할렘 등 흑인 지역을 여러 번 방문해서 흑인 표의 40%를 얻었다. 에이브 빔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력인 블루칼라 유태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었다.

에이브 빔은 8년 후 1973년 시장 선거에 당선돼서 4년간 시장을 지내게 된다. 3등을 한 윌리엄 버클리는 양당 후보로 갈 표를 거의 동등하게 잠식했다고 여겨졌다. 버클리 가족은 유명한 가톨릭 가문이기 때문에 뉴욕시의 가톨릭 표를 적잖게 가져갔음이 확인됐다. 버클리는 선거가 끝난 후 “자신의 출마가 향후 뉴욕 주와 미국의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코네티컷으로 돌아갔다. 버클리의 이 말은 1970년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그의 형인 제임스 버클리(James Buckley 1923~)가 보수당 후보로 당선되고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됨에 따라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계속)

사진 : 1965년 시장 선거 토론 모습. 가운데가 린지, 왼쪽이 린지에 이어서 시장을 지내게 되는 에이브 빔 민주당 후보, 오른쪽이 윌리엄 버클리. 버클리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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