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차드 클라인딘스트

작성일 : 2022-06-19 19:21조회 : 931

리차드 클라인딘스트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닉슨은 뉴욕으로 이사를 와서 로펌에 가담을 했다. 뉴욕에서 닉슨은 존 미첼(John N. Mitchell 1913~1988) 변호사를 알게 됐다. 미첼은 채권 거래를 다루어서 성공했는데, 닉슨을 지지하고 후원했다. 닉슨은 1964년 대선에는 나갈 생각이 없었고 골드워터의 선거를 도왔다. 미첼도 닉슨과 함께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 때 닉슨과 미첼이 알게 된 사람이 골드워터 선대본부를 이끌던 리차드 클라인딘스트(Richard Kleindienst 1923~2000)였다.

애리조나 출신인 클라인딘스트는 애리조나 대학을 다니다가 2차 대전 중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서 전쟁을 겪었고, 전후에 GI 장학금으로 하버드 학부와 로스쿨을 다닌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로펌을 열어 성공했으며 주 의회 하원의원도 잠시 지냈다. 애리조나 주 공화당 위원장으로서 그는 1964년 대선에서 골드워터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 기업인 출신인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는 ‘작은 정부와 개인의 책임’, 그리고 ‘법과 질서’(Law and Order)를 내세웠다. 골드워터의 선거운동은 변호사들이 주도했는데, 당시 41살이던 클라인딘스트가 주장해서 ‘법과 질서’라는 단어가 골드워터의 연설문에 들어갔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 후 ‘법과 질서’는 닉슨, 레이건에서 트럼프까지 공화당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슬로건이 됐다.)

1968년 대선을 준비하면서 닉슨은 존 미첼을 선거본부장으로 임명했고, 당선된 후에는 법무장관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닉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미첼은 클라인딘스트를 법무차관으로 임명한다면 장관을 하겠다고 했고 닉슨은 흔쾌히 동의했다. 클라인딘스트는 하버드를 나왔지만 동북부 리버랄을 경멸했기에 닉슨과 코드가 맞았다. 클라인딘스트는 차관직을 수락하면서 동년배인 윌리엄 렝퀴스트(1924~2005)를 차관보로 추천했다. 이렇게 해서 법무장관 미첼, 법무차관 클라인딘스트, 법무실(Office of Legal Counsel) 담당 차관보 렝퀴스트로 라인업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렝퀴스트가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되어 미국 헌법사를 바꾸게 되는 계기였다.

너무 말이 많아서 말썽이었던 그의 부인 마샤와 달리 과묵한 존 미첼 법무장관은 제대로 지시를 내리지도 못해서 차관인 클라인딘스트가 법무부를 이끌어갔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클라인딘스트는 블랙팬더 같은 지하조직 뿐 아니라 신좌파와 흑인 과격세력을 적대적으로 보았다. 그는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도 싫어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그의 면모는 1971년 5월 초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메이데이 반전시위’를 진압하는데서 나타났다. 신좌파 운동권은 워싱턴 DC의 정부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해 4월 말에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들은 평화 시위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 기관을 마비시킬 목적을 갖고 있었다.

닉슨은 메이데이 시위를 군대를 동원해서 원천봉쇄하라고 지시하고 캘리포니아 샌클레먼츠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떠나버렸다. 레어드 국방장관은 82공수사단과 해병대 병력을 차출해서 백악관과 의회 등 정부 건물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수만 명 시위군중이 모여 드는 가운데 미군 정예부대 병력이 대형 헬기로 백악관 부근에 내렸으니 워싱턴은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그 때 클라인딘스트 차관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주관해서 이 사태에 대한 정부 대응을 지휘했다.

클라인딘스트는 시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5월 3일 후에 해산하지 않는 시위자 전원을 검거하라고 지시했다. 사흘 동안 워싱턴 경찰 5000명은 시위참여자 13,000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워싱턴 스타디움과 콜로시엄에 수용됐는데, 이들을 먹이기 위해 햄버거 수만 개를 실어 나르는 등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마지막 대규모 반전 시위였던 '메이데이 반란'은 닉슨의 승리로 끝났고 사망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았으니 클라인딘스트가 일등공신이었다.

클라인딘스트가 닉슨의 지시를 따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법무부는 통신 대기업인 ITT를 상대로 반(反)독점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1심 재판에서 법무부가 패소했다. 법무부가 항소를 준비하자 닉슨은 클라인딘스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항소를 하지 말라고 했다. 1972년 선거를 앞두고 ITT는 닉슨의 선거 자금을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인딘스트는 닉슨의 지시를 거부하고 반독점국 차관보에게 항소하라고 지시했다. 항소심에서 법무부가 승소했고 대법원에서도 승리했다. 법무부는 ITT에 이어서 AT&T에 대한 반독점 소송을 준비했으며 1974년 AT&T의 기업분할을 요구하는 유명한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1972년 대선이 다가오자 존 미첼은 법무장관을 사임하고 닉슨의 선거대책위원회를 맡게 됐다. 닉슨은 후임으로 클라인딘스트을 임명했고 상원 인준을 거처 6월 12일에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닷새 후 워터게이트 빌딩에 5인조가 침입해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다가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6월 18일 아침, 클라인딘스트는 골프장에서 그 소식을 듣고 존 미첼과 백악관이 개입되어 있을 것임을 직감으로 알았다. 얼마 후 FBI 수사를 막아달라는 부탁이 들어오자 클라인딘스트는 담당 차관보에게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미첼이 선거대책본부장에서 물러나자 워터게이트 보도는 소강상태를 맞았고 닉슨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크게 승리했다. 대선 후 워터게이트 5인조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1973년 2월 상원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자 클라인딘스트는 법무장관직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닉슨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닉슨은 클라인딘스트의 사표를 갖고 있다가 4월 30일, 밥 홀드먼 비서실장과 존 얼릭먼 보좌관의 사표 수리를 발표할 때 같이 공표했다. 홀드먼과 얼릭먼은 닉슨의 최측근으로 워터게이트 은폐 혐의가 드러나자 사표를 제출했는데, 클라인딘스트의 사임도 같이 발표함에 따라 마치 클라인딘스트도 워터게이트에 연루된 것 같이 보였다. 클라인딘스트는 이런 닉슨의 행위에 분노하고 닉슨을 그 후에 보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닉슨을 용서하지 못했다. 클라인딘스트는 애리조나로 돌아왔는데, 워터게이트 녹음테이프가 공개됨에 따라 법정에 서게 되는 수모를 겪었다.

클라인딘스트가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어 상원 인준청문을 할 때 민주당 상원의원이 그에게 닉슨 대통령이 ITT 반독점 소송에 대해 항소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았냐고 묻자 클라인딘스트는 닉슨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일이 없었다고 증언을 했는데, 그것이 거짓임이 워터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공개된 백악관 테이프로 확인된 것이다. 클라인딘스트는 위증죄 유죄를 인정했고, 법원은 30일 구류와 벌금 100달러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그 후 클라인딘스트는 애리조나에서 변호사 업무에 전념하다가 2000년 2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사진(1) 닉슨과 클라인딘스크 (2) 상원에서 답변하는 클라인딘스트 장관

이전글1969년 에이브 포터스 사건

다음글윌리엄 렝퀴스트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