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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스타 장관’ ?
작성일 : 2022-08-01 13:32조회 : 37


‘스타 장관’ ?


대통령이 ‘스타 장관’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니까 어느 기자는 요즘 정쟁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이상민 장관과 한동훈 장관을 ‘스타 장관’이라고 내 세우는 기사를 썼다. 그런 기사를 써놓고 본인은 창피하다고 느끼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한동훈을 로버트 케네디에 비유하는 기사를 쓴 기자도 있었다. 이러다간 누구를 재키 케네디에 비유하는 기자가 나올 판국이다. 방송사에서 10년 이상 일했다는 국회의원이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모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대통령은 그 시점에서 요구되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인물을 발굴해서 기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과 안목을 갖춘 인물을 기용해서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야 그 대통령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일 필요는 없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잠재력이 큰 사람을 기용할 줄 알아야 훌륭한 대통령이다.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노동장관, 관리예산실장, 재무장관으로 등용한 조지 슐츠(George Shultz 1920~2021)가 그런 편이다. 슐츠는 레이건 행정부에선 국무장관을 오래 지냈으니,  그는 4개 부처의 각료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단한 인물이다. 닉슨이 슐츠를 노동장관으로 임명했을 때 그는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시카고 비즈니스 스쿨의 학장이었고, 노사 관계 외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1993년 초에 나는 정교수가 되었는데,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시점도 바로 그 때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시애틀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해서 한국의 위상을 떨쳤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은 2차 대전 참전 세대가 이끌던 시대가 끝났고 한국은 권위주의 정권이 이끌던 시대가 끝났다는 점에서 1993년은 의미하는 바가 컸다. 2차 대전 세대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졌으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됨에 따라 세계는 이제 평화와 번영만이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 때 클린턴 대통령이 임명한 각료급 중에 교수 출신으로 주목을 받은 인물이 로라 타이슨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과 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이었다. 로라 타이슨(Laura Tyson 1947~)은 MIT에서 박사를 한 UC 버클리 교수였는데. 클린턴이 각료급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으로 발탁했다. 여성으로선 최초로 모든 경제학자가 선망하는 중요한 포스트를 맡게 된 그녀는 자유무역이 고용을 증대한다고 보았고, 자유무역 시대에 부응해서 미국이 기술 경쟁에 주력해야 하며 통상정책도 하이테크 교역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클린턴과는 예일 로스쿨과 옥스퍼드 대학 로즈 장학생 동기생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1946~)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노동과 고용 문제를 다룬 책을 펴냈다. 노동장관으로서 라이시도 NAFTA가 결코 미국의 고용을 저해하지 않으며 미국 정부는 미국 노동자들의 역량을 배양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라 타이슨과 로버트 라이시는 당시 클린턴이 지향했던 자유무역과 기술 개발, 그리고 고용 증진 정책을 상징하던 인물이었다. 이들은 클린턴 1기가 끝나자 모두 대학으로 복귀했고, 그야말로 ‘스타 학자’가 되어서 오늘날까지 명성을 유지해오고 있다. 오히려 두 사람을 기용해서 스타로 만든 클린턴은 섹스 스캔들로 망신을 당했고, 또 안보를 경시해서 결국 9.11 테러가 발생하는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사진 (1) 새 각료를 소개하는 클린턴. 왼쪽부터 앨 고어 부통령, 빌 클린턴, 로라 타이슨, 캐롤 브라우너 환경보호처장, 도나 샬랄라 보건휴먼서비스 장관, 로버트 라이시. 라이시 장관은 키가 매우 작다. 캐롤 브라우너 EPA 처장은 경력이 너무 부족했고, 도나 샬랄라 장관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면전에서 섹스 스캔들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대놓고 쓴 소리를 해서 유명해 졌는데,  장관직을 물러나고 마이애미 대학 총장을 오래 지냈다. 사진 (2)는 로라 타이슨과 로버트 라이시의 기자 회견 장면. 교수 출신 장관이라면 이렇게 치열하게 토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클린턴 행정부 경제정책은 월가 출신인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하버드 교수 출신인 래리 서머스 재무차관이 주도했고 로라 타이슨과 로버트 라이시는 조연에 불과했다는 지적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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