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치인과 마이크

작성일 : 2022-09-28 18:45조회 : 741

정치인과 마이크

정치인이 마이크가 켜 있는 줄 모르고 솔직한 사담(私談)을 해서 화제 또는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 대선을 앞둔 그 해 9월 4일 일리노이 주 작은 도시에서 유세를 하던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와 부통령 후보 딕 체니가 나눈 대화일 것이다. 그 전 날 뉴욕타임스는 딕 체니가 국방장관을 그만 둔 후 8년 동안 체니 부부는 약 2,000만 달러(약 200억 원) 소득을 올렸는데, 그 중 20만 달러(약 2억 원)를 기부해서 겨우 1% 밖에 기부를 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내 보냈다.

체니 부부가 2,000만 달러를 벌었으면 세금으로 거의 절반을 냈을 테니까 그 기사는 조금은 치사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당시 뉴욕타임스, CBS 등은 부시가 아는 게 없고 외국에 나가 보지도 않아서 국제적 감각이 부족하고 주 방위군으로 병역을 하는 동안에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등 온갖 험담을 했다. 그럼에도 부시는 자신에 관한 이런 기사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날 유세장 연단에 선 부시는 체니에 대한 그런 기사를 쓴 애담 클라이머(Adam Clymer 1937~2018) 기자를 청중 속에서 보았다. 아직은 마이크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한 부시는 체니를 위로한답시고 “저기 뉴욕타임스의 메이저 리그 빌어먹을 놈(asshole), 애담 클라이머가 있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딕 체니는 “아 그렇네, 자식 신났어”고 장단을 맞추었다.("There's Adam Clymer, major-league asshole from the New York Times." "Oh yeah, he is, big time.") 그런데 마이크가 들어와서 있어서 두 사람 대화는 그대로 방송에 나왔고 덕분에 며칠 동안 시끄러웠다.

부시는 “부통령 후보에 한 사적 대화가 방송을 탄 데 대해 후회(regret)하며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후회한다”고 유감 표명을 했으나 그 말을 취소하거나 기자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애담 클라이머 기자는 하버드를 졸업하고 뉴욕타임스 기자로 워싱턴 정치를 오랜 동안 다루어온 중진 언론인이었다. 여하튼 이 에피소드는 공화당이 뉴욕타임스, CBS. NBC 등을 '메이저 리그 x구멍(asshole)'으로 보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금년 초에도 비슷한 일이 백악관에서 일어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가 안 나오는 줄 알고 인프레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질문한 폭스뉴스의 피터 두시(Peter Doocy 1987~) 기자가 눈에 들어오자 “저런 멍청한 개xx가 있나”("What a stupid son of bitch.")고 해서 파문이 일었다. 바이든은 기자에게 사과했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기자회견장에서 거듭 사과를 했다.

피터 두시는 폭스뉴스의 토크 쇼 진행자로 유명한 스티브 두시(Steve Doocy 1956~)의 아들로 빌라노바 대학을 나온 후 곧장 폭스뉴스에 취직해서 정치를 다루어 왔는데, 그는 상원의원이던 존 매케인(John McCain 1936~2018)에게 한방 크게 얻어먹은 적이 있다.

2017년 10월,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공화당이 추진해 온 오바마 케어(건강보험법) 폐지법안에 존 매케인 등 몇몇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했다. 이에 대해 폭스뉴스의 피터 두시 기자가 존 매케인 상원의원한테 “당신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가 틀어져서 모든 것을 반대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존 매케인은 “어떻게 그런 멍청한 말을 하느냐 ? 그런 바보 같은 걸 왜 묻지 ?.. 그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야.”("Why would you say something that stupid? Why would you ask something that dumb, huh? ... That's a dumb question.")라고 힐난해서 두시 기자를 박살을 내버렸다. 역시 할 말은 하는 매케인 의원인데, 사실 매케인 의원 정도는 돼야 기자를 혼내는 것이다. 바이든이 피터 두시를 ‘멍청한 xxx'(‘stupid son of bitch’)라고 부르자, 5년 전에 존 매케인 의원이 두시를 멍청하다고 혼내는 동영상이 다시 화제가 됐다.

(존 매케인은 해군사관학교를 나오고 해군 항공장교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그가 조종하던 A-4 스카이호크 지상공격기가 북베트남 미사일에 피격돼서 낙하산으로 탈출했으나 포로로 잡혔다. 매케인 소령은 부상으로 거의 죽을 뻔 했으나 매케인의 아버지가 당시 태평양사령부(US Pacific Command) 사령관인 존 매케인 제독임을 알게 된 북베트남군은 매케인을 병원에 입원시켜서 약간의 치료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매케인은 팔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후유증에 시달리자 북베트남 당국은 존 매케인을 미국으로 돌려보내려 했다. 하지만 매케인은 자기만 부친 때문에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파리평화협정이 맺어지고 포로들이 귀환했는데, 목발을 집고 닉슨 대통령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매케인 소령의 모습은 유명하다. 대령으로 예편한 매케인은 부인 신디를 만나 애리조나에 정착해서 하원의원을 4년, 상원의원을 30년 넘게 지내다가 암으로 임기 중 사망했다. 2008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오바마에게 패배했다.)

사진 : 존 매케인 의원이 기자를 혼내는 장면.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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