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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0월 유엔

작성일 : 2023-01-03 19:33조회 : 1,305

1971년 10월 유엔

대만과 중국과의 대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고무됐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은 대만을 군사적으로 점령할 기세다. 'One China'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은 1971년 10월 25일 유엔 총회 결의가 자신들의 입장을 확인했다고 보고 있다. 그 유엔 결의(Res. 2758)에는 1970~80년대 미국 정치의 주역인 닉슨, 키신저, 레이건 그리고 부시가 모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1960년대 들어서 UN에는 과거에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했다. 1960년대에는 인도, 인도네시아 등이 비(非)동맹을 내걸고 동서 양(兩)진영에 가담하지 않는 블록 외교를 내세웠다. 비동맹 그룹과 신생국가들은 신국제경제질서 등을 내걸고 미국과 서방에 대해 비판적으로 흘러갔다. 친(親)중국 성향인 알바니아가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정부는 대만 정부가 아니라 중국 본토 정부라는 중국 대표권 결의를 총회에 제출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 안건이 중요안건으로 2/3 찬성을 요구한다고 주장해서 막아 왔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스웨덴 등 서방국가들이 중국 편을 들자 1970년 10월에는 미국을 지지하는 국가가 과반수를 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1971년 7월, 미국 대도시 곳곳에서 대만을 지지하는 ‘Free China Week'이 열렸다.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 등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7월 15일, 15개 국가가 중국 대표권은 대만(ROC)가 아닌 중국(PRC)에 있다는 결의안을 유엔에 제출했다. 같은 날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가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하고 돌아왔으며 자기가 이듬해 봄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국무장관은 윌리엄 로저스였고 유엔 주재 대사는 조지 H. W. 부시였다. 국무부의 공식입장은 중국 대표권을 베이징 정부(PRC)로 교체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었다. 로저스 장관과 부시 대사는 각국 대표들을 만나서 설득을 했지만 분위기는 전과 달랐다. 그해 2월에 유엔 주재 대사가 된 부시는 “영국, 프랑스, 이태리가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주변에 말할 정도로 서유럽 국가의 배신에 분노했다. 부시가 키신저에게 입장을 묻자 키신저는 “우리가 꼭 이겨야 하느냐?‘고 답해서 부시는 ”그러면 진작 이야기했어야 하지 않느냐?“ 반문했다. 로저스 장관은 닉슨 대통령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백악관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10월 25일 유엔총회는 중국(PRC)를 안보이사국으로 하되 대만(ROC)은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도록 하는 미국 안건을 65 대 51로 부결시켰다. 사실 이는 유엔헌장 해석상으로도 불가능한 논리였다. 그리고 총회는 중국 대표권 문제를 2/3 동의가 필요한 중요안건으로 처리하자는 미국의 안건을 59 대 55로 부결시켰다. 이어서 총회는 중국 대표권이 중국(PRC)에 있다는 결의안을 76 대 35, 기권 17로 통과시켰다. 미국을 지지해서 반대표를 던진 국가는 호주, 일본, 뉴질랜드, 브라질, 필리핀, 우루과이, 혼두라스, 엘살바도르 등이었고, 결의안에 찬성한 국가는 공산권 국가와 인도 등 비동맹국가, 그리고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스웨덴, 핀란드, 멕시코, 말레이시아, 칠레, 이스라엘 등이었다.

표결에 앞서 안건을 제안한 알바니아 대표는 대만이 중국 영토를 불법으로 점거했다고 비난했다. 결의안이 통과되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 대표들은 회의장에서 춤을 추었다. 알바니아 대표는 “미국의 큰 패배‘라고 의기양양했고, 탄자니아 대표는 “20년에 걸친 미국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빈정거렸다. 표결이 발표되자 대만 대표단은 퇴장했고 곧 이어서 조지 H. W. 부시 대사도 퇴장했다. 부시는 기자들에게 “훌륭한 사람들(decent people)을 유엔에서 추방했다”고 총회 결의를 비난했다.

한편 10월 20일, 키신저는 다음 해 봄 닉슨의 중국 방문에 대비해서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번 방문은 공개된 일정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중국 측은 키신저에게 미국은 중국이 하나이며 베이징 정부(PRC)가 중국을 대표함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든 공동성명 초안을 내밀었다. 키신저가 직접적인 표현은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해서 “대만 해협에 면해 있는 모든 중국인들은 오직 하나의 중국이 있음을 미국은 확인한다”고 간신히 수정할 수 있었다. 유엔 총회에서 미국이 큰 차이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은 닉슨은 키신저에게 26일 오후까지는 워싱턴에 돌아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미국 여론은 60%가 유엔 총회 결의에 반대했다.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말한 대로 미국 여론은 결코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윌리엄 버클리의 형인 제임스 버클리 상원의원은 미국이 내는 유엔 분담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닉슨은 백악관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 유엔 총회 결의가 유감이며 총회장에서 반미 구호가 난무한대 대해 특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보수 여론을 대표하는 버클리 상원의원이 유엔 분담금 삭감을 주장한 데 대해 민주당 소속 맨스필드, 재비츠, 케네디 의원 등은 유엔 분담금 삭감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다.

닉슨 대통령이 대변인을 통해 유감 표명을 한 데는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로널드 레이건의 영향이 있었다. 레이건 주지사는 25일 한밤중에 닉슨과 통화를 했다. 밥 홀드먼 비서실장이 일지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레이건은 닉슨에게 직접 TV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으나 닉슨은 그것은 어렵다고 답했다. 로저스 국무장관은 레이건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분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저스 장관이 유엔 분담금 삭감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TV에 나오자 레이건은 로저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화를 냈다.

닉슨이 백악관 집무실에 자동녹음기를 비밀리에 설치했음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특검과 의회가 백악관 녹음 테이프를 보전토록 법원에 청구해서 그 시절 녹음 대화는 그대로 보전이 되어 있다. 2010년대 들어서 한 연구자가 1971년 10월 25일~26일 백악관 집무실 녹음을 들어 보다가 유엔 총회 결의가 있은 후 레이건과 닉슨이 한 대화, 그리고 닉슨이 밥 홀드먼 비서실장에게 한 이야기를 알게 됐다. 레이건은 닉슨에게 “원숭이들이 유엔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소?”하고 물었고, 닉슨은 웃으면서 알았다는 의미로 답했다. 닉슨은 홀드먼 비서실장에게 “식인종 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끊어 버리라”고 지시했다. 홀드먼은 닉슨의 말을 농담으로 알고 그냥 흘려 넘겼다. 아무리 사적 대화라도, 또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이런 표현까지 썼다는 것은 물론 상식적이지 않다. 닉슨은 워낙 입이 험한 사람이지만 레이건이 그런 표현을 썼다는 것은 의외로 여겨진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었고 부시는 부통령을 거쳐 역시 대통령이 됐다. 두 사람에게 1971년 10월 25일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안겨 주었다. 한편, 미국을 식민제국주의라고 기세등등하게 비난했던 알바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은 1990년 들어 소련이 망해버리자 미국만 바라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유엔 총회장에서 미국을 이겨먹었다고 환호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빈곤과 질병, 기아와 내란으로 병들어 있다.

- 사진 (1) 환호하는 중국 대표단 (2) 역시 환호하는 아프리카와 동유럽 대표들 (3) 부시 대사가 이어폰으로 표결 상황을 듣고 있다. 미국 대표단은 심각한 표정 (4) 일본 대표단은 미국의 입장을 열열히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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