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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쑤안 안

작성일 : 2023-03-09 19:41조회 : 510

팜 쑤안 안

팜 쑤안 안(Pham Xuan An 1927~2006)에 대해선 래리 버먼(Larry Berman : US Davis) 교수가 쓴 <Perfect Spy>(2007년)과 토머스 바스(Thomas A. Bass : SUNY Albany) 교수가 펴낸 <The Spy Who Loved Us>(2009년)가 나와 있다. 버먼 교수의 책은 베트남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베트남에는 인민 영웅인 그의 전기가 몇 권 나와 있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지는 알 수 없다. <Perfect Spy>는 팜 쑤안 안의 일대기를 무용담(武勇談)처럼 엮어 내서 좋은 평을 얻지는 못했다. 바스 교수가 펴낸 <The Spy Who Loved Us>는 미국 언론에 불편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당시 사이공에 머물면서 전쟁을 취재했던 미국 기자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팜 쑤안 안(이하 ‘안’으로 표기)은 사이공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프랑스 식민정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안은 후에의 조부모 집에서 살다가 다시 사이공으로 돌아와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프랑스 사회당이 보내준 사회주의 서적을 많이 읽었다. 학교에선 프랑스 역사를 가르쳤는데, 프랑스 대혁명을 알게 된 젊은이들은 프랑스 식민통치를 혐오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40년에 일본이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자 프랑스 식민정부는 본국의 비시 정부처럼 됐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식민통치를 계속하자 항일 투쟁을 했던 호지민이 이끄는 베트민은 프랑스를 상대로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많은 젊은이들처럼 안도 베트민의 청년 조직에 가담해서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군사훈련을 받았다.

미국은 트루먼 행정부 시절부터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프랑스에 자금을 지원했다.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 군이 패배하고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에서 남과 북이 갈라지자 사람들의 대이동이 발생했다. 하노이 등 북베트남에서는 가톨릭 신자와 프랑스 식민정부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왔다. 남쪽에 있던 베트민 지지자들은 북으로 넘어갔으나 호지민은 이들에게 다시 남으로 내려가서 투쟁을 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남베트남을 관리하는 프랑스 관료와 군경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 고문단을 파견했다. 사이공에 머물던 안은 몇몇 미국인 가정과 가까이 지내면서 영어를 배우고 미군 문화를 배우게 된다. 미군 고문단은 그들을 도와 줄 베트남 사람이 필요했고 영어가 되는 안은 미군 기관에서 일하게 됐다. 안은 미국 석유회사와 프랑스 관청 조직에서도 일을 했다. 그러한 안의 효용가치를 알아본 북베트남 수뇌부는 안을 X6이란 비밀요원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안을 직접 관리한 사람은 나중에 파리에서 키신저와 평화협상을 하게 되는 레둑토였다.

1954년 초 에드워드 랜스데일(Edward Lansdale 1908~1987) 대령이 CIA 주재관으로 사이공에 부임했다. 랜스데일은 필리핀에 있으면서 공산 게릴라를 소탕하고 항일 투쟁을 한 반공주의자 라몬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CIA 국장 앨런 덜레스(Allen Dulles 1893~1969)는 랜스데일에게 필리핀에서 했던 대로 베트남에서 해보라고 지시했다. 랜스데일은 자신을 도와줄 현지인이 필요했는데, 그 때 랜스데일의 눈에 띤 사람이 안이었다. 1957년 5월, 응고엔 딘 디엠(Ngô Đình Diệm 1901~1963. 11. 2)이 남베트남 대통령에 취임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남베트남 정부를 랜스데일 대령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즈음 하노이 당국은 안에게 미국에 가서 언론을 공부하라는 지령을 전달했다. 안이 자기가 미국에 가서 언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자 랜스데일 대령은 기꺼이 신원보증을 서고 CIA와 각별한 관계가 있는 아시아 재단으로 하여금 수속을 해주도록 부탁했다. 아시아 재단의 도움으로 안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2년제 대학 입학허가와 미국 비자를 얻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아시아 재단이 부담키로 했다. 베트민은 여기저기서 어렵게 돈을 끌어 모아서 안의 미국행 비행기 값과 안이 입고 갈 양복 네 벌을 안에게 전달했다.

1957년 10월, 안은 긴 여행 끝에 LA 인근에 있는 오렌지 코스트 칼리지에 도착했다. 대학측은 베트남에서 온 나이 많은 학생에 대해 친절을 베풀었다. 안은 그 때 미국 사람들의 친절과 미국 문화에 푹 빠져 버렸다. 2년 동안 공부하면서 대학 신문에 기사를 쓰기도 했다. 졸업 후에 안은 아시아 재단의 도움으로 새크라멘토의 신문사(Sacrament Bee)에서 인턴 기자로 잠시 일했다. 아시아 재단은 그런 후에 안이 유엔 본부에서 인턴으로 잠시 일할 수 있게 했다.

안은 운전을 배우고 중고차를 사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시아 재단을 방문했다. 그는 뉴욕까지 운전을 하겠다면서 뉴욕행 비행기 요금을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안은 라스베이거스, 시카고 등을 거쳐서 미국을 횡단해서 워싱턴에 도착했다. 워싱턴에선 사이공에서 알았던 국무부 직원 가정을 방문해서 재회의 시간을 보냈다. 아시아 재단은 안을 백악관, 의회, 그리고 FBI까지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 주었다. 안은 미국의 풍요한 생활과 광활한 자연 풍광, 그리고 미국 사람들의 친절함과 미국 담배 등 미국 문물에 매료됐다. 안은 유엔 본부에서 소련 지도자 후르시쵸프가 연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 뉴욕에서 자동차를 판 돈으로 안은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를 많이 사고 아시아 재단이 사 준 비행기 표를 갖고 사이공으로 향했다.

1959년 9월, 사이공에 도착한 안은 베트남 프레스라는 정부 신문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건물에 있던 영국의 로이터 통신의 통신원(stringer)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렇게 해서 안은 누구도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할 수 없는 신분을 갖게 됐다. 안은 1964년 초 로이터 통신 지국장과 벌어져서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외국 기자들의 취재를 도왔다. 1년 후 타임/라이프지(誌) 사이공 지국장으로 부임한 프랭크 매클로는 지국을 확장하기로 하고 안을 현지 주재기자(correspondent)로 고용했다. 1965년부터 안은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시사잡지 타임의 사이공 지국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1965년 3월,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내의 미 공군기지를 방어한다면서 해병대를 다낭에 상륙시켰다. 그 때까지는 12,000명 수준의 군사 고문단만 있었는데, 이제 지상군 전투병력이 베트남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자연히 사이공은 미국 언론의 핫스팟으로 부상해서 기자들이 모여 들었다. 베트남어도 못하고 베트남 지리도 모르고 베트남 국내 정세도 모르는 미국 기자들은 영어가 되는 현지 베트남 기자의 도움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그 가운데 팜 쑤안 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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