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팜 쑤안 안의 간첩 활동

작성일 : 2023-03-11 09:36조회 : 538

팜 쑤안 안의 간첩 활동

통신사가 신속한 뉴스 매체이던 1960년대에 팜 쑤안 안(‘안’)은 로이터 통신의 사이공 지국에 통신원으로 취직을 했다. 1962년 5월, 뉴질랜드 출신으로 런던 본사에서 일하던 닉 터너(Nick Turner 1935~2016)가 사이공 지국장으로 부임했다. 베트남 프레스(VTX)와 사무실을 같이 사용하고 있던 로이터 통신은 지국장인 터너와 통신원인 팜 쑤안 안이 전부였다. 1962년 6월, 로이터가 불교 승려 분신을 크게 보도하자 VTX와 관계가 파기되고 로이터는 카페 지브럴 부근 건물로 옮겼다.

안은 외국 언론 통신원이란 신분을 이용해서 얻은 정보를 하노이에 몰래 보냈다. 안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에 노모와 부인 그리고 아이들과 살았다. 그는 집에서 여러 종류의 새를 길렀고 마당에는 세퍼드가 있었다. 그는 새로운 새를 사러 지방에 간다면서 사이공을 며칠씩 비우곤 했는데, 베트콩의 남쪽 비밀 사령부가 있는 구찌 터널에 가기 위함이었다. 미군이 구찌 부근에서 검문을 강화하자 베트콩 본부는 나이 든 여성을 연락책으로 붙여 주었다. 이 여성은 1975년 사이공 함락까지 안이 전해 주는 보고서를 구찌 터널에 전달해서 혁명유공자로 표창을 받았다.

안은 밤중에 녹말 물을 펜으로 찍어서 보고서를 작성해서 음식물 포장지처럼 만들었다. 녹말 글씨는 마르면 보이지 않았으나 물을 적시면 글씨가 드러났다. 또는 타이프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그 필름을 생선이나 음식 속에 숨겨 구찌 터널로 보냈다. 그의 충직한 세퍼드는 인기척이 있으면 짖어서 경계하는 역할을 했다. 안은 적발되면 자기는 죽는다는 생각으로 15년을 살았다.

닉 터너는 이따금 분명한 이유가 없이 사무실을 나오지 않는 안이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중요한 정보는 안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나중에 밝혔다. 로이터에서 봉급을 받는 안이었지만 사이공 사정을 잘 모르는 다른 기자들에게도 정보를 주고 어울렸다. 닉 터너와 안은 서로 잘 지내지 못해서 안은 로이터를 그만 두었다. 1964년 말에 터너도 로이터를 그만 두고 프리랜서 기자로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 등을 취재하다가 1968년에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1962년 사이공은 디엠 대통령과 불교, 그리고 군부와의 갈등이 가장 큰 뉴스였다. 그해 2월 디엠 대통령에 불만을 품은 공군 조종사가 모는 A-1 전투기 두 대가 대통령 궁에 폭탄을 투하해서 디엠 대통령과 누 부부가 간신히 피신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 후 디엠은 경호를 강화하고 자신이 믿을 수 있는 부대를 사이공 부근에 추가로 배치했다. 1963년 들어서 베트콩의 공세가 빈발하고 승려가 연이어 분신을 하는 등 혼란스러웠다. 와중에 쿠데타 소문이 떠도는 등 사이공은 혼돈 그 자체였다. UPI의 닐 쉬핸, AP의 피터 아넷,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이런 상황을 전하면서 디엠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서 크게 보도됐다.

하지만 타임지 사이공 지국에서 보낸 기사는 뉴욕 본사에 의해 삭제돼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타임지 창업자인 헨리 루스(Henry Luce 1898~1967) 회장이 사이공에서 보내오는 기사를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디케이트 칼럼니스트 조세프 앨섭(Joseph Alsop 1910~1989)은 디엠 정부를 비판하는 젊은 기자들의 기사를 비판하면서, 장제스 정권을 비판한 결과와 같은 꼴이 될 것이라는 칼럼을 써서 파문이 일었다. 타임지 사이공 지국장이던 챨스 모어(Charles Mohr 1929~1989)와 다른 기자는 사표를 내버렸다. (찰스 모어는 뉴욕타임스로 옮겨서 베트남 전선을 누비면서 기사를 썼다. 그와 타임지 기자 데이비드 그린웨이는 1968년 2월 후에 전투 최전방에서 취재 중 부상당한 미 해병대원을 위험을 무릅쓰고 후송한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헨리 루스 회장은 LA 타임스의 프랭크 매클로(Frank McCulloch 1920~2018)에게 타임지 사이공 지국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이공에 도착한 매클로는 팜 쑤안 안을 현지 기자(correspondent)로 고용했다. 안은 사이공에서 유일한 외국 언론사 현지 기자가 됐다. 당시 잡지계의 제왕이던 타임/라이프사의 창업자 헨리 루스 회장은 확고한 반공주의자였다. 국무부와 국방부는 타임지에 대해선 다른 언론에 알리지 않는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사이공의 미군 사령부도 비보도를 전제로 다른 언론에 알리지 않는 정보를 타임지 지국에 전해 주었다. 이런 고급 정보는 안을 통해 하노이로 넘어 갔다.

안은 1975년 4월 말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을 점령할 때까지 신분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세기의 간첩’(Spy of the Century)이었다. 사이공 함락이 임박하자 타임지 본사는 비행기 한 대를 보내서 특파원과 베트남 직원 그리고 이들의 가족을 탈출시켰다. 안의 부인과 아이들도 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했다. 그러나 안은 이 비행기에 없었다. 안은 사무실에서 “이제 타임지 사이공 지국에는 자기 밖에 없으며 자기가 지국장”이라는 짤막한 텔렉스를 본사로 보냈다. 그리고 소식이 끊어졌다.

사이공에서 일했던 기자들은 안이 탈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미국에 도착한 가족을 위로했다. 그런데 2년 후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안의 가족이 유럽의 중립국으로 출국해서 어렵게 사이공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를 두고 이런 저런 추측이 나돌았다. 1980년이 돼서 안이 하노이의 사람이었음이 밝혀졌다. 1981년 베트남 정부는 소수의 미국 기자들의 입국을 허용했는데, 이들이 안의 소식을 물어 보자 “안 대령은 당신들을 만날 수 없다”는 답이 돌아 온 것이다. 안은 베트남 군의 대령이었다. (그는 나중에 준장으로 승진한다.)

베트남이 1990년대 들어서 개방을 하자 모든 사실이 드러났다. 북베트남 수뇌부는 안을 가족과 함께 미국에 보내서 계속 간첩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안의 가족이 먼저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안이 미국에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사이공에 머물라고 지시한 것이다.

- 사진 (1) 안이 1960~70년대에 탔던 르노 자동차. 1992년 사진. 이 자동차는 그가 사용했던 타자기와 함께 하노이의 군사 정보국에 전시 돼있다고 한다.
- 사진 (2) 사이공이 함락되기 직전에 묘한 표정으로 시내 거리를 보는 안.
- 사진 (3) 안과 세퍼드. 1960년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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