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닉슨, 이스라엘을 구하다

작성일 : 2023-05-08 00:25조회 : 1,388

닉슨, 이스라엘을 구하다

닉슨 대통령은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입이 험한 닉슨은 누구를 욕할 때면 “그 놈은 유대인이야”(That s.o.b is a Jew!)라고 소리를 질러서 비서실장을 지낸 밥 홀드먼은 그런 닉슨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닉슨의 오랜 친구로 연방준비위(Fed) 의장을 지낸 아서 번스와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모두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닉슨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한 자기 나라를 구해 준 은인이라고 기억하며 고마워한다.

1973년 10월 6일, 유대인 금식일(Yom Kippur)에 이집트와 시리아는 전격적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지대공 미사일(SAM)을 대동하고 진격해서 이스라엘 공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이집트 군은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Sagger)를 갖고 원거리에서 이스라엘 탱크를 파괴했다. 10월 9일까지 만 3일 동안 이스라엘은 전투기 49대와 탱크 500대를 상실했으며 포탄과 탄약 재고가 위험한 수준에 달했다. 다급해 진 이스라엘 정부는 주미 대사를 통해서 무기와 탄약을 보충해 주기를 요청했다. 키신저 국무장관은 민간항공기가 미국에 와서 필요한 보급품을 가져가도록 했다. 이스라엘 항공사의 보잉 수송기가 미사일과 포탄을 실어 날랐으나 물량이 제한적이었고 탱크와 전투기를 가져 올 수는 없었다.

10월 9일, 이스라엘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닉슨은 키신저 국무장관에게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CIA는 소련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보급품을 보내기 시작했으며 공수사단에 대해 비상대기령을 내렸다고 보고했다. 당시 국방장관은 제임스 슐레진저(1929~2014)였는데, 리투아니아-러시아계 유대인인 그는 개신교(루터파)로 개종을 한 탓인지 이스라엘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닉슨이 키신저에게 지시를 해도 그 지시가 국방부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절박해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Golda Meir 1898~1978)는 9일 저녁에 직접 닉슨한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이 도와주기 않으면 이스라엘은 사라진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전해진다. (닉슨의 회고록에 메이어 총리와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두 사람이 통화를 했다고 여겨진다.) 다음 날 오전 늦게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백악관으로 메이어 총리의 감사 서신을 갖고 닉슨에 전달했다. 메이어 총리는 “오늘 아침에 당신이 우리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내도록 지시했다고 들었습니다. - - 우리는 힘든 전투를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때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고 썼다.

10월 11일, 닉슨이 슐레진저 국방장관에게 상황을 물어 보았더니, 국방부는 어떻게 할지를 검토 중이며 C-5 수송기 3대를 동원할 예정이라는 답을 들었다. 화가 난 닉슨은 키신저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하늘을 나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란 말이야”고 큰 소리를 쳤다. 닉슨은 이스라엘 대사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테니 리스트를 가져오라”고 했다. 이스라엘 대사는 F-4 팬텀, M 60 신형 탱크, 미사일 등 길고 긴 리스트를 가져왔다. 10월 12일, 닉슨은 합동참모본부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모든 것을 신속하게 보내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니켈 그라스 작전’(Operation Nickel Grass)이라고 불리는 공수 작전이 시작됐다.

미국 본토에서 출발한 수송기는 중간 기착이 필요했으나 영국 서독 등 나토국가 마저 중동 산유국의 눈치를 보느냐고 자국 내 기지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포르투갈이 대서양의 아조레스 기지 사용을 허용해서 미 본토에서 발진한 C-141과 C-5 수송기가 아조레스에 기착해서 급유를 할 수 있었다. 수송기들은 아랍국가 영공을 피해서 공해 상공을 비행해야 했고 지중해에 들어선 후에는 6함대 함재기가 호위를 했고 이스라엘 부근에 오면 이스라엘 공군기가 호위를 했다. 10월 14일 저녁에 첫 C-5가 텔아비브 공항에 착륙했다. C-5 수송기는 한 번에 탱크 4대를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탱크, 자주포, 헬기가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유럽에 주둔 중이던 미 공군 팬텀기 37대가 아조레스 기지를 거쳐 이스라엘 공군기지에 도착했고, 맥도널 더글라스 공장에서 나온 새 팬텀기 10대도 뒤이어 도착했다. 미 해군이 운용 중이던 A-4 46대가 항공모함을 출발해서 이스라엘 기지에 도착했다. F-4와 A-6를 미군 조종사들로부터 넘겨받은 이스라엘 공군은 미군 표식인 별을 지우고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다비드의 별 표식을 그렸다. 미군 조종사들로부터 전투기를 인계 받은 후 3~4시간 만에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F-4와 A-6를 몰고 출격을 했으니, 당시 전황(戰況)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넘겨받은 F-4는 최신 블록으로 당시 가장 뛰어난 전폭기였다. (F-14 톰캣은 1974년 가을부터 미 해군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M-60 탱크 200대와 M-109와 M-107 자주포 43대, 그리고 대공미사일도 모두 최신형이었다.

미군 수송기가 도착한 즈음 이스라엘은 반격에 나서서 전황이 반전(反轉)됐다. 10월 24일에 휴전이 맺어지자 공수 작전은 규모가 줄어들었으나 11월 14일까지 계속돼서 총 22,300 톤을 공수했다. 11일 동안 수송기 570편이 대서양을 건너서 아무런 사고도 없이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공급한 것이다. 미국은 선편으로 군수물자 33,000톤을 보냈는데 휴전 후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전쟁 전보다 오히려 더욱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쟁 기간 중 2800명이 전사하고 8000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피해가 커서 그 책임을 두고 큰 논란이 일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자 사우디의 파이잘 국왕은 미국과 서방국가에 석유수출을 금지해서 ‘1차 오일 쇼크’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공수 작전에서 대형 수송기 C-5의 가치가 확인돼서 미 공군은 C-5를 추가로 구매해서 C-5가 주력 수송기로 등장했다. 헨리 키신저 장관은 텔아비브와 카이로, 그리고 다마스커스를 왕래하면서 휴전을 이룩하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8년 9월 17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카터 대통령이 주재하는 가운데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나쳄 베긴 이스라엘 총리는 평화협정에 서명해서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평화가 찾아 왔다. 이 평화협정의 설계자는 키신저였고, 닉슨이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닉슨은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과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였다.

사진 (1) : 텔아비브에 도착한 C-5 갤럭시 수송기에서 탱크와 자주포가 내려오고 있다.
사진 (2) : 이스라엘 기지에 F-4 팬텀을 몰고 도착한 미군 조종사.
사진 (3) : F-4에 다비드의 별 표시를 칠한 후 출격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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