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0년 서울

작성일 : 2023-05-25 08:29조회 : 1,401

1970년 서울

며칠 전 젊은 세대 몇이랑 베지버거 세트 점심을 같이 했다. 1인 당 가격은 7,000원 정도였다. 최근에는 짜장면 가격도 7,000원이 돼서 이제 점심 값 1만 원 시대가 된 셈이다. 그 자리에서 1970년에는 커피와 짜장면이 얼마나 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 보았더니 조금은 터무니없는 답을 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1970년은 이미 반세기 전이니 짐작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학을 입학한 1970년에 다방 커피는 50원이었고 중국집 짜장면은 60원, 짬봉이 70~80원이었던 것으로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밖에서 점심을 먹을 일이 별로 없어서 경제관념이 없었으나 대학에 입학한 후 점심은 물론이고 저녁도 친구들과 밖에서 먹을 일이 많아서 그 시절 가격이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 아메리카노가 대략 4,000~5,000원, 짜장면, 짬봉이 7,000~8,000원이니까 그 비율 만큼은 4 대 7, 또는 5 대 8로 그 때나 지금이나 똑 같으니 신기하다.

1970년에 인문계 대학졸업자가 갈 수 있는 최고의 민간 직장은 삼성물산과 반도상사(지금은 LG상사)이었는데, 초봉 월급이 7~8 만원이었다. 그러다가 김우중씨가 세운 대우실업이 대졸 초봉 월급으로 10 만원으로 주어서 “두 자리 월급시대가 열렸다"고 언론이 대서특필했다. 대우가 그렇게 나오자 삼성과 LG(당시는 반도상사, 금성사, 樂喜화학 등으로 명칭이 여러 가지였다)도 초봉 월급 10만원을 하게 됐다. 그러니까 당시 우리나라 최고 월급쟁이 초봉 월급은 다방 커피 2,000잔이었는데, 지금은 초봉 월급이 400만원이라고 하면 아메리카노 1,000잔 밖에 안 된다.

짜장면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없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는 중국집에서 면을 수타(手打)로 뽑아서 그것이 짜장면의 맛을 좌우했고 잘하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을 구분했다. 세종문화회관 건너편에 있는 가봉루(嘉鳳屢)라는 중국집이 지금도 있는데,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적부터 계속 영업을 해 온 노포(老鋪)다. 1970년대는 1층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2층으로 옮겼다. 몇 년 전에 일부러 짜장면을 시켜 먹었는데 요즘은 먹을거리가 많아서인지 내가 느끼기에 면발이나 맛이 50년 전 같지 않았다.

짜장면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커피는 말이 같은 커피이지 지금 커피는 그 시절 다방 커피와는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다. 무엇보다 당시 ‘다방(茶房)’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후 가장 큰 변화를 뽑으라면 다방에 가서 담배 피면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갔던 다방이라야 세종로 4거리에서 종로 2가, 을지로 2가 그리고 명동이니까 서울 한 복판이었다. 가장 큰 다방은 종로 1가 YMCA 지하다방이었다고 기억된다. 을지로 입구 광교 우리은행(역사적 건물) 골목 입구 지하에 있던 로망다방은 JBL 스피커 시스템을 자랑했던 음악다방이었다. 그 시절 다방으로 전설적인 곳은 이대 앞에 있던 빅토리아 다방이다. 어두운 조명에 클래식 음악을 틀었던 그 다방은 물론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가는 곳이었다.

다방에는 'lady'의 일본식 발음이라는 ‘레지’가 있었는데, 서울 한복판 다방의 ‘레지 누나’들은 한결같이 미인이었다. 당시는 다방에서 담배를, 그것도 줄담배를 피웠을 때라서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담배를 멋있게 피는 것이 유행이었던 그 시절에 하루 종일 담배연기 속에서 일했던 ‘레지 누나’들 중에는 나중에 폐암에 걸린 경우도 적지 않았을까한다. (당시에는 간접흡연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당시 다방에서 팔았던 커피는 커다란 커피포트에 분쇄 원두를 넣어서 내린 것으로 실내 장식이 우아한 시내 한복판 다방의 커피 맛이 그래도 좋았다.

우리가 동숭동 캠퍼스에서 공부하던 1970년대 전반기에 동숭동에서 가장 유명한 다방은 문리대 앞에 있던 ‘학림다방’으로 지금도 있다. 물론 서울대가 관악으로 옮겨간 후의 ‘학림’은 그 시절의 학림은 아니다. 법대 앞에는 ‘대학다방’이 있었는데, 그 다방의 ‘마담 누님’은 오너였다. 우리들 이름까지 알아서 부르곤 했던 그 누님은 독신이었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했고, 우리가 졸업하고 난 후에 다방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대학 시절에 자주 갔던 명동 입구의 독일식 생맥주집 ‘카이저호프’의 주인도 같은 시기에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카이저호프 사장의 처제가 우리와 같은 학번으로 연대를 다녔는데, 역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월남에서 미국이 사실상 패배해서 손을 떼자 월남은 공산화될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 1975년 4월에 월남은 공산화됐다. 그리고 그 다음은 우리나라가 그리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풋풋했던 젊은이들이 이제 모두 황혼기에 접어들었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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