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0년대 AFKN

작성일 : 2023-05-25 08:34조회 : 1,338

1970년대 AFKN

서울대 70학번이던 우리가 3학년이 되던 1972년은 암울한 시기였다. 10월 유신이 그해 10월에 있었다. 1971년 봄은 교련 반대 시위가 동숭동 캠퍼스에서 며칠 계속되더니 휴교를 했고 가을에는 국가비상조치인지 뭔지를 해서 또 휴교를 했다. 3학년 때인 72년 봄 학기는 간신히 학교를 다녔는데, 그해 10월엔 별안간 군 트럭이 대학 구내로 밀고 들어와서 학생들은 모두 집에 가라고 했다. 그게 우리가 겪은 ‘10월 유신’이었다. 그 후 공부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었다.

1971~72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였고 펜타곤 페이퍼 사건과 파리 평화회담, 닉슨의 중국 방문과 워터게이트 등으로 뉴스가 넘쳐흘렀다. 나는 그런 뉴스를 <TIME>지와 주한미군방송(AFKN)을 통해서 접했다. 특히 매시간 5분씩 하는 AFKN 라디오 뉴스는 영어 듣기 훈련에 더 없이 좋았다. 펜타곤 페이퍼와 워터게이트는 닉슨 대통령에게 곤혹스러운 사건이지만 미군 장병을 상대로 하는 AFKN 뉴스는 본국의 뉴스 보도를 그대로 압축해서 내보냈다.

1973년 11월 초, <TIME>지가 창간 후 처음으로 사설(Editorial)을 통해서 닉슨 대통령에게 사임을 촉구했는데, 그 사건은 당시 긴급한 톱 뉴스였다. <TIME>은 원래 친(親)공화당 성향이었는데, 창업 후 처음으로 사설을 통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무너졌다면서 사임을 하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AFKN 뉴스로 접했다. 그런 소식을 뉴스로 듣고 며칠 지나서 <TIME>이 도착해서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군대 방송이 자기들의 총사령관인 대통령에 대해 타임지가 사임해야 한다는 사설을 내보냈다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내보냈으니, 나는 그것이 언론 자유이고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1970년~80년대는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디스크자키 전성기’였다.. 1970년대 밤 9시 경에 AFKN 라디오를 키면 걸직한 목소리로 진행하던 'Wolfman Jack Show'를 들을 수 있었다. 진행자 이름 그대로 늑대가 짖는 듯 하는 목소리로 진행한 이 프로는 주로 시끄러운 음악을 내보내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Wolfman Jack'은 물론 진행자의 본명은 아닌데, 그가 진행하는 프로는 당시 미국의 블루칼라 계층에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1971~72년으로 기억되는데, AFKN 라디오엔 자정에 시작하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 프로가 있어서 밤늦게 공부하면서 즐겨 들었다. 그 프로의 진행자는 바비 직스라는 현역 군인이었다. 목소리가 얼마나 은은하고 달콤한지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가 제대를 하고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자 그를 좋아했던 우리 여대생들이 환송 파티를 열었다고 하니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만할 것이다.

AFKN TV는 저녁 6시인지 7시에 종합뉴스를 내보내서 집에 있을 때에는 그것을 자주 보았다. 현역 군인들이 진행하는 종합뉴스였다. 1974~75년으로 기억되는데, 일리 이만스클이라는 여군 장병이 종합뉴스를 진행했다. 발음이 얼마나 정확하고 명료한지 못 알아들을 것이 없었다. 1973년 초, 닉슨 대통령이 징병제를 철폐함에 따라 여성들이 자원입대하는 경우가 늘어서 군대 방송도 여성이 하게 된 것으로 생각됐다.

검은 머리에 이름도 독특한 그녀는 동유럽계로 생각되는데, 뉴스 마지막은 “I am Army Specialist 일리 이만스클”로 끝을 맺었다. 우리로 치면 ‘Specialist'는 병장에 해당되는데, 아마도 그녀는 고등학교를 나오고 군에 입대해서 복무한 후 군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여성이 그런 기회를 당당하게 가질 수 있는 그런 미국을 나는 부러워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니까 우리나라도 컬러 TV 시대가 활짝 열려 있었고, AFKN TV는 피터 제닝스가 진행하는 'ABC World News Tonight'을 아침에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서 AFKN 뉴스는 CNN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케이블 TV로 CNN을 보기 전까지 그것이 세계와 미국을 보는 창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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