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종로2가 ‘양우당’ 서점

작성일 : 2023-05-28 18:44조회 : 574

종로2가 ‘양우당’ 서점

작년 11월 조선일보 책 코너에 서점을 다룬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70~80년대 베스트셀러는 광화문·종로서 결정됐다‘ (2022년 11월 12일자 기사) 책은 <서점의 시대>(지은이 강성호, 264쪽)로 기사는 아래와 같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종로 일대엔 ‘서점 거리’가 있었다. 광화문 사거리엔 숭문사, 정음서림, 범한서적, 광문사가 있었고 보신각을 지나면 종로서적, 삼일서적, 양우당, 동화서적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광화문파’와 ‘종로파’로 나뉜 숱한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고, 바로 이 거리에서 베스트셀러가 판별 났다. 그러다 교보문고의 등장(1981)과 동화서적의 강남 이전(1985)을 계기로 크게 요동치고 대형 서점 시대가 시작됐다. - - “

1970년대 내가 대학을 다닐 적에 서점은 종로서적 아니면 양우당(良友堂)이었다. 당시 서점은 자기 재량에 따라 책값을 받았는데, 종로서적은 정가 그대로 받은데 비해 양우당은 웬만한 책은 10% 할인을 해주었다. ‘양우당’은 한자 그대로 ‘좋은 벗이 있는 곳’이라서 친근하기도 했다. 그러면 종로서적은 왜 가느냐 하는 의문이 나올 것이다. 종로서적 매장이 더 넓어서 책을 찾기가 쉬웠고, 친구들 만나는 약속을 하기도 좋았다. 책을 종로서적에서 살펴 본 후 양우당에 가서 사는 경우도 있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세종로 한복판에 교보빌딩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그 지하에 교보문고가 있었다. 그 후 ‘교보문고 시대’가 열림에 따라 종로에 있던 서점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양우당이 먼저 문을 닫았고 종로서적이 그 뒤를 따랐다.

조선일보 기사는 1970년대 서점이 “‘광화문파’와 ‘종로파’로 나뉘어 숱한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썼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지금은 세종로 사거리라고 부르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종로 2가까지는 걸어서 두 블록이라서 그런 구분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기사에 나온 ‘범한(汎韓)서적’은 국내 서적을 파는 서점이 아니어서 베스트셀러와는 무관한 서점이다. 범한서적은 외국 도서 수입판매상이었다. 모든 분야의 외국 서적이 서가에 빽빽하게 차있는 범한서적은 들어서면 냄새 자체가 좋았다. 의학, 공학 등 전문분야 책이 많았으며 정치 법률 분야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브라이어리(J. L. Brierly) 교수의 국제법(The Law of Nations) 등 주로 정평이 있는 총론적인 책을 거기서 살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할 때 필요했던 보다 전문적인 책은 타임/라이프 총판인 우일문화사에 유네스코 쿠폰을 구매해서 주문해야 만 했다.

1970년대 초는 복사기가 보급되기 전이고 우리나라 대학 교재가 미비한 분야가 많아서 외국 교과서를 사용하는 과목이 상당히 있었다. 그런 교과서를 수입하는 대리점이 범한서적이었다. 우리 법과대학은 외국 책을 교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지만 서울대 상과대학은 경제원론을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 교수의 'Economics'를 교재로 사용했다. 그런 기본과목 교과서는 일본이나 홍콩에서 찍은 아시아판(版)이 들어와서 크게 비싸지 않았다. 당시 경제학과 친구들은 두꺼운 사무엘슨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자랑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후에 조순 교수의 경제학 교과서가 나와서 서울대는 그 책을 교재로 사용했다. 그래서 그 후론 학생들 실력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외국 교과서 시장은 1970년대 후반 들어서 복사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타격을 입었고 범한서적이 문을 닫게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교보빌딩이 들어섬에 따라 거기에 있던 작은 건물이 많이 없어졌는데, 미국 문화원 건물도 그렇게 흔적이 없이 사라져 버렸다. 미국 문화원은 교보빌딩 자리에 있던 아담한 2층(또는 3층) 건물에 있었다. 1층 도서관은 누구나 들어 갈 수 있었다. 테이블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고, 학생증을 제시하면 사인을 하고 빌려 갈 수도 있었다. 미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개론적인 책이 많았으나 정치와 헌법에 관한 책도 구비해 놓고 있었다. 교보빌딩이 들어섬에 따라 을지로 1가 롯데호텔 건너편으로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갈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1985년 몇몇 과격한 대학생이 그곳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도무지 상상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사진 : 양우당 폐업을 알리는 기사. 1991년 또는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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