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 발라키, 벅시 시걸

작성일 : 2023-07-06 10:49조회 : 528

조 발라키, 벅시 시걸

미국인들이 마피아의 역사와 조직을 알게 된 날은 1963년 9월 25일이다. 그날 상원 위원회에 출두한 마피아 조직원 조 발라키(Joseph Valachi 1904~1971)가 마피아의 조직과 역사에 대해 증언했다. 그의 증언으로 쥬세페 마세리아(1886~1931) 가문과 살바토르 마란자로(1886~1931) 가문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뉴욕 마피아 내전 ’(1930~1931)의 내막을 비로소 알게 됐다. 마세리아를 제거한 마란자노는 찰스 루치아노(1897~1962)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루치아노가 선수를 쳐서 마란자노를 살해해서 뉴욕 마피아는 루치아노가 장악하게 됐다. 루치아노는 각 지역의 보스들이 참여하는 위원회(The Commission)를 만들어서 의사 결정을 하도록 했다. 이런 위원회가 있다는 사실은 발라키의 증언으로 처음 알려졌다.

조 발라키의 의회 증언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덕분에 가능했다. 두 달 후에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기 때문에 두 달만 늦었더라면 이런 증언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마리오 푸조가 1969년에 펴내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The Godfather>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며, 알 파치노를 일약 톱 클라스 배우로 만든 영화 <The Godfather> I, II, III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감옥에 갇혀 있던 뉴욕 마피아 보스 비토 제네비제는 조직을 배신한 발라키의 생명에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었으나 발라키는 특별 감옥 독방에서 자기 수명대로 살고 사망했다. 이 과정은 1972년에 나온 영화 <The Valachi Papers>에 잘 나온다. 픽션이 가미되지 않은 매우 드라이한 이 영화에서 찰스 브론슨이 조 발라키로 나온다.

1930~31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마피아 내전을 겪은 뉴욕은 이 문제를 방치해서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다. 1935년, 뉴욕 주지사 허만 레만과 뉴욕시장 라과디아는 마피아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연방검사이던 토머스 듀이(Thomas Dewey 1902~1971)를 특별검사로 임명해서 마피아와의 전쟁에 나서게 했다. 1937년에 뉴욕 지검장으로 선출된 듀이는 뉴욕시 경찰과 뉴욕주 경찰을 지휘해서 마피아와의 전쟁에 나섰다.

듀이의 주된 타깃은 찰스 루치아노였다. 1936년 4월, 루치아노는 아칸소에서 체포돼서 삼엄한 경비 속에 뉴욕으로 송치됐다. 루치아노에게 적용된 혐의는 매춘 강요죄였다. 그해 6월 루치아노는 매춘 강요죄 60여 건으로 기소돼서 징역 30~50년 형을 선고 받았다. 루치아노에 이어서 2인자였던 비토 제네비제(1897~1969)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이태리로 도망을 갔다. 그 후 뉴욕 마피아는 프랭크 코스텔로(1891~1973)가 관리하게 된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발발했다. 뉴욕 항만에서의 의문의 폭발사고로 군수물자 운송에 문제를 겪은 미군 지휘부는 이태리계 노동자들이 많은 뉴욕 부두의 안전을 위해선 루치아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덕분인지, 미군은 뉴욕항에서 영국으로 전쟁 물자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미군은 시칠리에 상륙할 예정이었다. 미군 정보국 OSS(CIA의 전신)은 루치아노에게 시칠리의 마피아 조직이 미군 상륙을 도와주면 사면해 주고 이탈리아로 추방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시칠리의 마피아 조직은 미군의 성공적인 상륙작전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뉴욕주지사 토머스 듀이는 루치아노를 사면하고 시칠리로 출국시켰다. 듀이는 자기가 검사장을 지낼 때 잡아넣은 루치아노를 주지사가 되어 풀어준 것이다. 토머스 듀이 주지사는 1948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트루먼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계 미국 젊은이들은 미군에 입대해서 이태리와 독일을 상대로 싸웠다. (영화 <대부 I>은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가 해병대에 입대해서 참전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이탈리아에 친미 반공정권을 수립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CIA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서 기민당, 교황청, 파시스트 잔존세력, 그리고 마피아를 엮어서 공산당과 사회당에 대항하도록 했다.

1948년 이탈리아 총선에서 기민당이 승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 사는 이탈리아계 주민들은 본국에 있는 친척 친지에게 기민당을 지지하는 편지 보내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마피아도 큰 힘을 보탰다. 덕분에 이탈리아에선 그 후 50년 동안 기민당이 주도하는 우파가 정권을 장악했으며 1990년대에 잠시 사회당 정권을 걸쳐서 다시 우파 연립이 장악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마피아에게 신천지로 등장한 곳이 쿠바였다. 1946년 12월 말, 마피아 위원회가 쿠바의 수도 아바나 해변에 있는 유명한 나쇼날 호텔에서 열렸다. 이탈리아에 있던 루치아노를 비롯해서 마이애미의 마이어 랜스키, 뉴욕의 비토 제네비제, 프랭크 코스텔로, 조 보나노, 쥬세피 프로파치, 시카고의 샘 지앙카나, 탬파의 산토 트라피칸트 등이 참석했으며, 이 때 뉴올리언스를 대표해서 칼로스 마르셀로가 참석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보스 중 마르셀로는 말석(末席)으로 큰 영향력이 없었다. 이들은 미국 내 마약거래에서 그들의 영역을 정하고, 쿠바의 카지노 사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 사업이 부진한데 대한 책임을 물어서 벅시 시걸을 제거하기로 했다. 쿠바에 대한 사업확장과 벅시 시걸을 제거하기로 한 결정은 유대인으로 마이애미의 보스인 마이어 랜스키(1902~1983)가 주도했다.

라스베이거스에 플라멩고 카지노 호텔을 세워서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가 생겨나는 토대를 만든 벅시 시걸은 1947년 6월 20일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스 자택에서 소총 세례를 받고 사망했다. 범인은 물론 잡히지 않았다. 시걸의 일대기를 극화한 영화가 1991년에 나온 <Bugsy>다. 벅시 시걸을 상당히 미화한 이 영화에는 워렌 비티가 벅시 시걸로 나오고 영국배우 벤 킹슬리가 마이어 랜스키로 나온다.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벅시가 오늘날의 라스베이거스가 있도록 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동서 냉전이 치열했던 1950년대에 마피아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들은 2차 대전 중에는 반(反)파시스트, 냉전시대에는 반(反)공산주의 노선을 택해서 승리하는 쪽에 섰기 때문이다. FBI 국장 에드가 후버가 “마피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그런 시각의 표현이었다. 그러다가 마피아는 로버트 케네디라는 의외의 복병(伏兵)을 만나게 된다.

사진 (1) 영화 <The Valachi Papers>(1972년)의 한 장면. 가운데 안경 쓴 인물이 루치아노, 그 다음이 조 발라키, 비토 제네비제.
사진 (2) 영화 <Bugsy>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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