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대법관은 법관 출신

작성일 : 2023-07-14 08:26조회 : 449

미국 대법관은 법관 출신

미국에서 흑인과 형사피의자의 권익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얼 워렌 대법원장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정치인이었다. 이처럼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기에 이르는 동안 미국 대법원의 구성원 중에는 정치인 출신도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 임명된 대법관은 법관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법관 중에는 변호사 업무를 했던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젊은 시절에 잠시 하다가 판사 생활을 하고 대법관이 됐다.

지금 미국 대법원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7명의 대법관이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있다가 대법관이 됐다. 흑인 대법관 클라렌스 토머스는 1년 동안 항소법원 판사를 지내고 대법관이 됐으나 대부분 10년 내외 기간을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대법관이 됐다. 단 한명의 예외는 하버드 로스쿨 학장을 지내고 법무부 송무차관을 잠시 지내다가 대법관이 된 엘리나 케이건이다, 케이건은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쳤고 차별금지 같은 분야의 논문을 발표했다. 보수성향으로 논란이 많았던 에이미 배럿 대법관은 항소법원 판사가 되기 전에 노터댐 대학의 헌법 교수로 있으면서 탁월한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지 대법관이 구성이 다양해져야 한다면서 재야법조인이나 교수를 별안간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일이 많아졌다. 법원에서 판사만 한 사람은 세상의 다양한 목소리를 모른다는 식의 논리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냉정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다양성 논리에 편승해서 대법관을 한 사람들이 과연 법관으로서 구실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변호사나 교수가 상사법이니 뭐니 하는 분야에 전문가라고 해서 대법관으로 선정하는 것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해당 분야 전문가는 해당 분야와 깊은 연관성을 맺게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어떤 특정분야와 밀착된 변호사나 교수가 대법관이 된다는 것은 요즘 미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이 법관으로서 공정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분야를 전담하는 특별법원의 판사가 아닌 한 법관은 양쪽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양식을 갖추면 충분하다. 문제는 그런 ‘양식’은 이익집단과 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50년 동안 미국 대법원 대법관이 대부분 항소법원(고등법원) 판사 출신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참조해야 한다. 특정분야의 이익을 위해 금전적 보수를 받고 일을 한 변호사나 교수는 대법관 후보를 검토하는 법무부와 변호사협회(ABA)에 의해 우선적으로 제외된다. 무엇보다 그런 사람은 판사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기업을 위해 봉사한 변호사, 대형로펌을 위해 봉사한 교수는 그가 하던 대로 그 일을 하면 된다. 대법관이 되면 자기가 봉사했던 로펌이 대리한 사건을 담당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이다. 자기가 전문가라면서 자기 전문 분야는 기피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니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설치고 있는 부끄러운 세상이다.

사진: 미국 대법원 대법관 9인.

이전글기타소득과 필요경비

다음글유명한 교수의 변론과 자문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