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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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흑산공항
작성일 : 2023-09-09 19:21조회 : 49


흑산공항


20대 국회에서 내가 흑산도 공항 문제를 접하게 된 시점은 2018년 초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에 반대해서 민주평화당 쪽에 섰지만 형식적인 당적은 바른미래당이었다. 조배숙 의원이 민주평화당 대표가 된 후 나한테 당의 정책연구원을 맡아 달라고 해서 조배숙이 대표를 하는 동안만 맡아 주기로 했으니 조금 이상한 모습이었다.

울릉도와 흑산도에 공항을 세운다고 했지만 흑산도는 해상 국립공원 경내에 있기 때문에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에서 당연히 거부될 줄 알았는데, 국립공원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는 그렇지 않고 통과될 것 같다고 해서 뒤늦게 흑산공항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환경단체에서는 주로 주목(朱木) 단지 훼손과 철새 군락지 훼손 문제를 제기했고 아울러 경제성 분석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나는 도무지 활주로가 너무 짧아 보여서 활주로 제원과 거기에 취항한다는 ATR-42 기종에 대해 찾아보았다. 활주로가 짧은 흑산 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Top 10에 들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ATR-42는 추락 사고가 하도 많아서 여러 곳에서 추락한 현장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공항에 가장 위험한 항공기가 다니겠다는 것이다.

신안군은 연간 60만 명이 흑산 공항과 김포 공항을 왕래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계산이면 ATR-42가 적어도 10대는 취항해서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녀야 하는 것으로 계산이 됐다. 왜냐하면 시계 착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강풍, 우천, 안개 등 기상이 좋지 않으면 비행을 할 수 없고, 야간 이착륙도 물론 안 된다. 기상이 나쁘면 배가 못 다녀서 교통이 불편하다고 하는데, 배가 못 다니는 기상이면 프로펠러 비행기는 더욱 더 못 다니는 것이니까 허황된 이야기였다. 흑산 공항이 생기면 수도권 사람들 사이에서 흑산도 관광 붐이 일어서 너도 나도 흑산도를 갈 줄 아는 모양인데, 그것은 죽은 귀신이 웃고 갈 일이었다. 정부 기관과 지자체에서 용역을 얻어서 만들어내는 사업계획서니 환경영향평가니 하는 것들은 발주자의 황당한 꿈을 온갖 거짓말을 동원해서 합리화하는 쓰레기에 불과함을 다시 한 번 잘 보여 주었다.

울릉 공항과 달리 흑산 공항은 해상국립공원 경내에 있어서 국립공원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따라서 내가 속한 환경노동위원회의 소관이었다. 울릉 공항이 일찍 건설에 들어갔으나 흑산 공항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 때문에 절차가 지연됐던 것이다. 흑산 공항은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약이었고 당시 총리이고 나의 대학 동기생인 이낙연의 관심사항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은 개발사업이라면 4대강이든 5대강이든 무엇이든 찬성하는 집단이었고, 민주당은 다음 총선에서 호남을 회복하기 위해선 호남의 지역사업을 지지해야만 했다. 사정이 이러니까 환노위에서 흑산 공항을 반대할 의원은 나 뿐이었다. 그 때 한 민주당 중진의원은 나한테 자기 당의 수도권 의원들도 흑산 공항을 좋아하지 않지만 공개적으로는 말을 하지 못한다면서 나를 응원했다.

2018년 정기국회 국정감사 때 나는 이 문제를 제기했다. ATR 기종의 빈번한 사고 이력,  미국은 ATR을 화물용으로만 사용한다는 사실, 사업계획을 승인한 국토부는 필수적인 시뮬레이션도 제대도 하지 않았음도 밝혀졌다. 참고인으로 불려나온 국토부 항공담당자는 공항과 항공기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날 울산 공항 사태가 난 것이다.) 국회에서 흑산 공항 구상이 안정성부터 문제가 많음이 알려지자 국립공원위원회가 흑산 공항 승인을 보류하기로 해서 사실상 무산돼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 대선을 두고 윤석열 후보 측은 새만금 공항과 흑산 공항을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 당시 국민의힘이 호남을 공략한다는 것이 겨우 이런 공항건설 공약이었으나 부끄러운 일이고, 이런 공약으로 호남에서 표를 얼마나 얻었는지는 모두가 잘 알 것이다.

국립공원위원회가 흑산 공항을 심의할 때 환경부장관은 김은경이었다. 나중에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한 김은경은 소박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김 장관은 자연을 훼손하고 산꼭대기에 건설한 풍력발전, 자연을 훼손하는 흑산 공항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성향 때문에 김은경 장관은 국무총리실 및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흑산 공항에 대해서 김 장관은 공개적으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응원했다. 김은경이 장관을 물러나게 된 것도, 그리고 결국 기소를 당해서 실형을 선고 받게 된 데는 흑산 공항 등을 두고 권력 핵심부와 갈등이 빚은 영향도 있었다고 나는 본다. 정권이 바뀌면 산하기관 임원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현상은 어느 부처에서나 있었다. 다만 김 장관은 그것을 순진하게 다루어서 사달이 났을 뿐이다. 

국립공원이 아닌 울릉 공항은 공사를 빨리 시작하더니 활주로 문제와 항공기 기종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공항을 건설한다면서 가장 기본적인 항공기와 활주로 조건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이다. 국립공원위원회가 당시 심의를 보류한 덕분에 흑산 공항은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제 흑산 공항은 깨끗하게 백지화할 수 있게 됐다. 공항 공사를 절반이나 한 상태에서 곤란한 지경에 빠진 울릉 공항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새만금을 닮은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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