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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파르티잔 : 유고와 이탈리아
작성일 : 2023-09-09 19:28조회 : 60


파르티잔 : 유고와 이탈리아


홍범도 장군의 이른바 빨치산 경력을 두고 그것을 공산주의 활동이라고 비난하니까 빨치산은 파르티잔(partisan) 항일 활동이라고 반박하는 논쟁이 일었다. 빨치산의 어원은 영어로는 파르티잔(partisan),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말하는 당심(黨心 Partiinost)을 의미하니까 정당의 강령에 충실한 당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주로 공산국가에서 공산당에 충성을 하는 당원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미국에서도 ‘partisan’은 열성 당원이란 의미로 쓰이며,  ‘partisan politic'은 극심한 대립을 초래하는 당파 정치라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와는 별도로 게릴라 전투원 같은 사람들을 19세기에도 파르티잔으로 지칭해 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산 파르티잔은 아마도 레닌주의에 입각한 공산당원 전투원이라는 의미를 띄는 것으로 보인다.
 
1920년대 들어 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가 집권을 하고 이어서 독일에선 나치가 집권을 했다. 나치 독일군이 오늘날의 세르비아 등 동유럽을 장악하자 이에 대해 저항하는 무장 게릴라 부대가 동유럽에 생겼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파르티잔’이라고 불렀다. 나치 군대는 파르티잔을 공개처형과 집단처형으로 가혹하게 탄압했다. 세르비아 지역에서 파르티잔을 이끈 티토는 2차 대전 종전 후 공산국가 유고슬라비아를 세워서 초대 대통령으로 1980년까지 통치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파르티잔 부대가 치열한 저항을 했다. 파시스트 군대와 나치 친위대는 이탈리아 파르티잔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파시스트에 저항한 이탈리아 파르티잔의 성향은 대체로 좌익, 즉 공산주의였다. 파르티잔이 활발했던 지역은 중북부였고, 나치에 의해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온 지역도 중북부였다. 파시스트가 패배의 길을 가게 되자 파르티잔은 무솔리니와 그의 정부(情婦)를 체포해서 총살하고 시신을 거꾸로 매달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나치 독일군이 진주하자 이탈리아는 미군에 의해 비로소 해방될 수 있었다.

미군이 이탈리아를 해방하자 파르티잔은 미군을 환영하고 무기를 버린 후에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해서 정치세력화 했다. 하지만 미국이 지지하는 기민당과 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당과의 협치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결국 1948년 4월 총선에서 이탈리아의 운명이 결정될 판국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CIA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반드시 기민당이 승리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CIA 로마 지부는 현금을 가득 넣은 자루를 전국의 기민당 후보들에게 배포하고 모든 우익 성향 집단을 하나로 모아서 공산당에 대항하게 했다. 바티칸의 지휘 하에 가톨릭 성직자들은 공산당이 집권하면 미사를 올릴 수 없다고 설파했고, 파시스트 잔존세력과 마피아까지 CIA의 돈을 받고 기민당을 지지했다. 미국에 사는 이탈리아계 사람들은 이탈리아에 있는 친척 친지에게 편지를 써서 기민당 지지를 호소했는데, 이런 활동에선 마피아도 역할을 했다. 이렇게 해서 1948년 총선에서 기민당이 의회 다수당이 됐다. 이탈리아는 나토에 가입했고 미군 시설을 받아드렸으며, CIA는 그 후에도 이탈리아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덕분에 기민당은 계속 집권했고 이탈리아는 구치 등 패션산업과 페라리 등 고급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다. 야당으로 머물러 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1990년에 동유럽이 몰락하자 간판을 내렸다.

나치 독일이든, 파시스트 이탈리아든, 또는 일본 제국주의이든 간에 이에 무력으로 대항했던 세력은 주로 좌익 또는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익 성향 사람들은 나치나 파시즘을 싫어하더라도 직장 재산 등 잃을 것이 있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서 파르티잔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전체주의에 대한 항거라는 명분에 있어서는 우익이 좌익을 이기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과연 어느 집단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점이다.

동유럽 지도자로는 가장 훌륭하다고 보았던 티토가 이끌었던 유고슬라비아는 공산체제가 무너진 후 내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어서 몰락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는 변함없이 대다수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우파 정부가 들어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큰 빚을 졌다. 미주리 시골 출신으로 대학을 나오지 못한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인 해리 트루먼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를 본성적으로 모두 싫어했다. 그런 트루먼 덕분에 우리와 이탈리아는 공산체제의 위험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 사진  :  티토가 지휘하는 파르티잔 부대가 도시를 점령하고 진군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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