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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프 키친
작성일 : 2023-09-12 18:50조회 : 47


수프 키친


전주에서 네 살 난 어린 아들을 둔 어머니가 생활고로 사망하고 어린 아들은 아사하기 직전에 구출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집에는 먹을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하니 그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했거나 않았던 모양이다. 문득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절에 관한 책에서 읽었던 부분이 생각이 났다. 뉴욕시에서 1931년에 20명이 아사(餓死)했고 1934년에는 110명이 아사했다. 그나마 아사자에 관한 공식 통계를 기록한 곳은 뉴욕시였다. 미국 제1의 도시 뉴욕에서 아파트에서 살던 가족이 냉장고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굶어죽은 시신으로 발견됐으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제3세계 빈곤국가에선 빈곤이 밖으로 보이는데 비해 선진국형 빈곤은 아파트에서 외롭게 굶어죽을 때까지 외부로 노출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빈곤도 선진국형이 된 양상이다. 

1930년대 미국은 농촌도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다. 더스트 보울(Dust Bowl)이라고 부르는 흙먼지 재앙까지 덮친 오클라호마 등에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아사했는지는 확실한 통계도 없다. 아사는 극단적인 경우라고 하더라도 굶주림(hunger)은 일상적이었다. 1933년 초에 취임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경제회복을 위한 뉴딜을 하겠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내어 놓았으나 불황은 1930년대 내내 지속됐다. 대량 실업으로 인해 사람들이 먹을 것을 걱정할 때 도시 여기저기에 생긴 수프 키친(Soup Kitchen)이 이들에게 먼저 구호의 손길을 보냈다.

교회 등 민간기구가 기부금을 얻어서 실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멀건 수프와 빵으로 채워 준 수프 키친은 대공황 시대의 상징이었다. 대공황 초기에 시카고에선 갱 두목 앨 카폰이 수프 키친을 열어서 하루 세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서 어려운 시카고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 후에도 지금까지 미국 도시에선 교회와 자선단체가 수프키친을 운영해 오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확충돼서 푸드 스탬프가 빈곤층에게 제공되지만 기부금과 자원봉사로 유지하는 수프 키친은 제도적 복지가 채우지 못한 공간을 메워주었다. 이처럼 수프 키친은 이제 미국적 풍경으로 자리 잡았고, 2008년 경제위기 후 대량실업이 발생하자 수프 키친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아파트 월세는 밀려있겠지만 그래도 냉장고와 부엌이 있는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은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런 현상이 바로 우리 옆에 생겨서 몇 자 적어 보았다. 그런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게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는 급식소라도 있었다면 그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 사진 (1) : 1930년대 뉴욕 맨해튼 수프 키친 앞에서 기다리는 실업자들.
- 사진 (2) : 미 해군은 대민 봉사의 일환으로 수프 키친을 부대 근처에서 운영하는데, 이곳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수프 키친이다
- 사진 (3) : 미 해군이 운영하는 뉴저지의 수프 키친. 그런데, 무료 급식을 위해 온 사람들이 모두 비만이다. 수프 키친을 이용하는 비만인들을 도무지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수프 키친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사진이다. 세상의 모든 정책과 제도는 이런 양면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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