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릴린 먼로와 밀튼 그린

작성일 : 2024-01-01 20:15조회 : 291

마릴린 먼로와 밀튼 그린

195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마릴린 먼로는 검은 가발과 진한 선글라스를 쓰고 가명으로 예약한 비행기 표를 들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디마지오와 이혼 수속을 끝내고 두 달이 지나서였다. 먼로는 밀튼 그린(Milton Greene 1922~1985)과 함께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했고 자동차를 몰고 마중 나온 그린의 부인 에이미(Amy Greene 1929~ )를 만났다. LA 공항에서나 라과디아 공항에서나 먼로를 알아 본 사람은 없었다. 먼로와 그린 부부는 코네티컷 서남쪽 웨스턴에 있는 그들의 오래된 농장 주택에 도착했다. 먼로는 할리우드와 LA를 전격적으로 탈출한 것이다.

그러면 밀튼 그린은 누구인가 ? 1922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밀튼 그린은 어릴 적부터 사진과 카메라를 좋아했다. 유명한 프랏 예술학교에 장학금 입학을 얻어냈으나 그는 그것을 포기하고 당대의 사진 저널리스트와 패션 사진가 아래에서 도제식으로 훈련을 받고 사진가(professional photographer)가 됐다. 그린은 주로 유명한 배우와 가수의 인물사진을 많이 찍었고, 그가 찍은 사진은 <Life>, <Look>, <Harper>, <Vogue> 등 중요한 잡지에 실렸다. 그가 찍은 인물은 마릴린 먼로, 프랑크 시나트라, 새미 데이비스,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에바 가드너, 케리 그랜트 등 최고의 연예인을 총망라 했다. 밀튼 그린은 패션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확립시킨 사진가 몇 명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다. 그런 밀튼 그린이 가장 많이 찍은 사람은 마릴린 먼로였는데, 먼로에게 그린은 단순한 사진가가 아니었다.

밀튼 그린은 첫 부인과 이혼하고 1953년에 쿠바 태생으로 모델이던 에이미와 결혼했다. 먼로를 LA에서 데리고 올 때 밀튼과 에이미에게는 조슈아(Joshua Greene 1954~ )란 첫 돌이 지난 어린 아들이 있었다. 25 에이커 숲속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에 도착한 먼로는 통나무 난로에 몸을 녹였고, 밀튼 부부는 발코니가 있는 독립된 방을 먼로에게 내주었다. 먼로는 눈 덮인 숲과 깨끗한 겨울 공기를 난생 처음으로 경험했다. 이렇게 해서 먼로는 그린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시작했다.

밀튼 그린은 1953년 여름에 <Look>지의 위탁으로 먼로를 찍으러 LA에 와서 먼로를 알게 됐다. 그린은 먼로에게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몸에 꼭 붙은 옷만 입을 필요가 없다고 코치해 주는 등 먼로가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도록 조언을 했다. 에이미 그린도 LA에 와서 먼로를 만나는 등 세 사람은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1954년 9월 먼로가 맨해튼에서 촬영을 하고 나서 디마지오에 폭행을 당했을 때에 그린 부부도 가까운 호텔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에이미 그린은 호텔 방으로 먼로를 찾아가서 온 몸에 멍이 든 먼로를 위로했다.

1954년 한 해 동안 먼로는 디마지오와의 부부관계가 악화된 데다가 자신이 비록 스타가 됐지만 오래 전에 20세기 폭스사와의 맺은 계약 때문에 수입도 보잘 것이 없고 자기는 출연작품을 선택할 수도 없어서 불만이 많았다. 먼로는 제인 러셀과 같거나 더 높은 인기를 누림에도 계약 조건이 불리해서 러셀이 버는 수입의 1/7 밖에 받지 못했다. 더구나 폭스사는 먼로를 섹스 심벌 역할로만 활용해서 보다 심각한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먼로는 불만이 많았다. 먼로는 이런 고민을 털어 놓고 의논할 사람이 없었는데, 밀튼 그린은 그런 계약이 불공정해서 무효라고 먼로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린은 먼로에게 자기와 함께 독자적인 영화사를 만들어 보자고 부추겼다. 이렇게 해서 마릴린 먼로는 ‘할리우드 탈출’을 결심했다.

연말 휴일 동안 먼로는 그린 가족과 함께 한가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먼로는 어린 아들 조슈아를 안고 놀아주고 돌보았다. 먼로와 함께 지내면서 에이미는 먼로가 도무지 정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았다. 숲속 전원주택에서의 고요한 삶은 오래 가지 못했다. 프랑크 시나트라, 빌리 와일더 감독 등이 전화를 했다. 1955년 1월, 밀튼 그린은 뉴욕에서 기자 80여명을 초청해서 먼로와 함께 칵테일 파티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먼로는 자신과 밀튼 그린이 함께 ‘마릴린 먼로 프로덕숀’(MMP)을 발족할 것임을 발표했다. 먼로는 자신이 51%, 그린이 49% 지분을 갖고 참여하며 독자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겠으며, 자신은 자신이 하고 싶은 배역으로 나올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어느 기자가 먼로에게 “어떤 영화에 나오고 싶냐?”고 물었더니, 먼로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영화”라고 답했다. 기자가 카라마조프의 스펠링을 불러달라고 하니까 먼로는 “내가 모든 단어의 스펠링을 외우지는 못 한다”고 답했다.

LA를 도망치듯 떠나온 먼로는 무일푼이어서 모든 비용은 그린이 감당해야만 했다. 영화사를 만들고 기획을 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고 이는 모두 그린의 몫이었다. 그린은 먼로가 스타에 걸 맞는 지위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4월부터는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타워에 아파트를 얻어서 거실 겸 사무소로 쓰도록 했다. 그 후 먼로는 주말에만 코네티컷의 그린의 집에서 머물렀다.

- 사진 (1) : 밀튼 그린과 먼로.
- 사진 (2), (3) : 1955년 4월, 뉴욕의 한 방송사가 그린 부부의 집을 찾아가서 그린 부부와 먼로가 사는 모습을 TV 프로에 내 보냈다. 그 때 나온 그린 부부와 먼로, 및 조슈아를 안고 있는 먼로. 조슈아는 먼로가 애정을 주었던 유일한 꼬마였다. 먼로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 사진 (4) : 2018년 밀튼 그린의 사진 작품 책 <The Essential Marilyn Monroe by Milton H. Greene> 발간에 즈음해서 89세가 된 에이미가 아들 조슈아와 함께 TV 대담에 나왔다. 에이미 그린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먼로는 주변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하기를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살았다”고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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