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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릴린 먼로 30주기
작성일 : 2024-03-05 10:25조회 : 222
마릴린 먼로 30주기
먼로가 죽은 후 30년이 되는 1992년에도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일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먼로에 관한 책들이 새로 나왔다. 그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책은 피터 브라운과 패트 바햄이 쓴 <Marilyn : The Last Take>로, 그해 8월 더튼 출판사에서 나왔다. 기존에 나온 책과 자료에 근거해서 쓴 이 책은 하드커버에 이어서 페이퍼백과 포켓북으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먼로의 죽음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로버트 슬레처는 먼로에 관한 자료를 모아서 <The Marilyn Files>을 펴냈다.
먼로에 관한 책은 아니지만 먼로가 죽었을 당시 LAPD 윌리엄 파커 국장의 핵심 참모였고 1978년 이후 LAPD 국장을 지내고 있는 대릴 게이츠(Daryl Gates 1926~2010)는 1992년 초에 회고록 <The Chief : My Life in the LAPD>를 펴냈다. 이 책에서 게이츠 국장은 “먼로가 죽던 8월 4일 로버트 케네디는 LA에 왔으며, LAPD는 로버트 케네디가 LA에 올 때마다 알고 있었”고, ”(먼로가 죽던 날) 로버트 케네디가 LA에 있다는 것을 우리(LAPD)는 알았으나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또한 그가 먼로를 만났는지 아닌지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그(로버트 케네디)가 그녀(먼로)를 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자살했다는 이론을 믿은 적이 없다“고 썼다. 현직 LAPD 국장의 이 같은 언급이 갖는 의미는 클 수밖에 없었다.
1992년 가을, 유력한 출판사인 하퍼콜린스(HarperCollins)는 전기 작가 도널드 스포토(Donald Spoto 1941~2023)가 마릴린 먼로 전기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스포토는 알프레드 히치콕, 로렌스 올리비어 등 영화계 인물의 전기를 펴내서 알려진 작가였다. 1993년 3월, 스포토의 <Marilyn Monroe : The Biography>가 드디어 서점에 나왔다. 출판사는 “처음으로 먼로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드러났다”고 홍보했다.
스포토는 이 책에서 먼로의 생애를 지루하게 다루고는 마지막 부분에 먼로의 죽음을 다루었다. 스포토는 로버트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며, 케네디 형제는 먼로의 죽음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스포토는 패트 뉴컴이 먼로의 마지막 2년 기간에 대해 자기가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썼다. 스포토는 랠프 그린슨과 유니스 머레이가 먼로에게 관장(灌腸)을 하면서 수면제 성분을 먼로에 주입해서 죽게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스포토는 로버트 슬레처, 앤소니 서머스 등 먼로의 죽음에 대해 책을 낸 사람들은 직접적인 증거도 없이 단지 건너서 들은 이야기, 즉 전문(傳聞) 정보에 근거해서 케네디 형제를 모함했다고 주장했다. 스포토는 먼로가 유니스 머레이를 해고하고 랠프 그린슨도 해고하려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먼로를 죽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말하자면, 케네디 형제와 먼로와의 관계는 모두 낭설(浪說)이고, 로버트 케네디가 먼로의 죽음에 연루돼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 사실 확인도 없이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도널드 스포토의 결론이었다. 이처럼 스포토는 케네디 형제를 먼로의 죽음으로부터 완전히 면책(exonerate)시켜 버렸다.
스포토는 먼로의 집에 로버트 케네디가 드나든 것을 보았으며 먼로가 죽던 날 먼로의 집 앞에 앰뷸런스와 경찰차가 와 있었다는 이웃 사람들의 증언, 피터 로포드의 집에 로버트 케네디와 먼로가 드나들었으며 먼로가 죽던 날 밤에 주변에서 헬기가 이륙했다는 피터 로포드의 이웃 사람들의 증언을 완전히 무시했다. 스포토는 먼로가 죽던 날 밤 먼로의 집에 도착한 앰뷸런스를 운전했던 제임스 홀의 증언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무시해 버렸다. LAPD 국장인 대릴 게이츠의 회고록도 무시했고, 먼로가 죽던 날 밤 피터 로포드의 자동차를 단속한 경찰관의 진술, 그날 밤 피터 로포드의 집 부근에서 LA 공항으로 운항한 헬기의 운항기록도 무시해 버렸다.
스포토는 패트 뉴컴이 제공한 소중한 자료를 많이 참조했다고 책에서 밝혔다. 하지만 패트 뉴컴은 먼로가 죽은 후 케네디가(家)의 도움으로 미국 공보처에서 일하다가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를 도운 케네디가의 사람이다. 더구나 패트 뉴컴은 앤소니 서머스 등 먼로의 죽음을 파헤치던 연구자들을 전혀 만나지 않다가 스포토에게 도움을 주었다니 이상할 수밖에 없다.
유명한 배우나 가수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매내이저나 스태프를 교체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먼로도 자기를 도왔던 연기 코치와 홍보 비서를 교체한 적이 있었다. 로버트 슬레처는 먼로가 죽기 며칠 전에 먼로를 만났을 때 먼로가 그린슨 등 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해 불만을 피력했다고 전했다. 스포토에 의하면 먼로가 유니스 머레이를 교체할 생각을 갖고 있음을 알아차린 머레이가 먼로의 주치의인 랠프 그린슨과 함께 먼로를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판타지 치고도 엉성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먼로는 종종 관장을 했다고 하지만 관장을 한다면서 수면제를 다량으로 섞어서 먼로를 인사불성에 빠뜨려 죽게 했다는 시나리오는 듣기에도 이상하다.
대형 출판사인 하퍼콜린스는 스포토의 책을 팔기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하지만 스포토의 책에 대해선 비판적 목소리가 컸다. 20년 동안 LA 타임스와 배니티 페어지(誌) 기자로 있으면서 할리우드에 대한 기사를 써오고 할리우드의 권력과 돈, 그리고 섹스를 다룬 책 <The Club Rules: Power, Money, Sex and Fear — How It Works in Hollywood>(1992년)을 펴낸 바 있는 폴 로젠필드(Paul Rosenfield 1949~1993)는 그해 5월 2일자 LA 타임스 서평 기사 'Leave the Kennedys Out of It'에서 스포토의 책은 사실을 왜곡한 수정주의(revisionist)라고 혹평했다.
로젠필드 기자는 스포토에 의하면 먼로는 팜스프링스의 빙 크로스비 집에서 케네디와 긴 밤을 보내지 않았고, 먼로를 죽인 사람은 케네디 형제가 아니라 먼로가 해고하려고 한 정신과 의사와 하인이며 이들은 먼로에게 관장(灌腸)을 할 때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를 고농도로 넣어서 먼로를 죽였으며, 피터 로포드는 케네디 형제와는 단지 친한 친구였고 여자를 소개해준 핌프가 아니었다고 비꼬았다. 로젠필드는 먼로의 삶에 케네디 형제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깊이 간여되어 있음이 분명한데도 스포토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힐난했다. (*)
스포토는 자기 책에서 앤서니 서머스가 직접 자료를 수집하지 않고 전해들은 풍문으로 책을 썼다고 비난했다. 이에 화가 난 앤서니 서머스는 영국 법원에 스포토와 하퍼콜린스 출판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담당 판사는 서머스가 제출한 인터뷰 녹음 테이프를 살펴보고 서머스가 저자로서 충실한 집필을 했다고 판단했다. 1994년 3월 28일, 법원의 주재 하에 스포토와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앤서니 서머스에게 상당한 손해배상을 하고 향후에 출간될 페이퍼백에는 내용을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도날드 스포토의 패배는 30년 동안의 은폐와 사실 왜곡, 특히 케네디가(家)가 주도한 ‘disinformation campaign’이 실패했음을 의미했다.
(* 폴 로젠필드 기자는 1993년 5월 27일 44세 나이로 브렌트우드 자택에서 사망했다. LA 검시관은 그의 사인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 사진 (1) : 앤소니 서머스. 왼쪽이 1985년 사진, 오른쪽이 2020년 사진.
- 사진 (2) : 도널드 스포토의 책, 하드커버와 페이퍼백.
- 사진 (3) : 베스트셀러 <Marilyn : The Last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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