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성일 : 2024-03-29 09:56조회 : 79

<Gambling with Armageddon>

넷플릭스에 올라있는 <Turning Point: The Bomb and the Cold War>를 보면서 마틴 셔윈(Martin J. Sherwin 1937~2021) 교수의 마지막 저술인 <Gambling with Armageddon>을 흥미롭게 읽었다. 원자폭탄 개발과 미소(美蘇) 핵 경쟁, 그리고 3차 세계대전이 될 수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책으로 2020년 10월에 나왔다.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주로 핵 무기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연구한 저자는 최근에 영화화되어 화제가 된 로버트 오펜하이머 일대기 <American Prometheus>의 공저자이기도 한데, 2021년 10월에 84세로 사망해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저술이 되고 말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선 책도 많이 나왔고 박사학위 논문도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셔윈 교수의 이 책은 2000년대 들어서 새로이 확인된 사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핵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오늘날 현실에서 의미가 깊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초래한 케네디 정부 초의 피그스 만(Bay of Pigs) 침공에 대해선 작년에 여기에서 정리해서 올린 바 있기 때문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되는 과정을 중요한 논점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언급한 기사나 칼럼을 보면 미국의 군부는 쿠바에 대한 공격을 주장해서 핵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컸는데. 케네디 대통령이 로버트 케네디를 통해서 소련과 막후 협상을 해서 사태를 평화롭게 해결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는 로버트 케네디가 죽은 후에 나온 그의 책 <Thirteen Days : A Memoir of the Cuban Missile Crisis>(1968) 때문이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에 미국이 터키에 있는 주피터 핵미사일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흐르시쵸프 소련 수상의 제안을 케네디와 그의 참모진이 받아드려서 위기가 해소됐음이 확인됐다. 로버트 케네디의 책을 대필한 케네디 백악관의 스피치 라이터였던 시어도어 소렌슨(Theodore Sorensen 1928~2010)도 그것을 인정한 바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이 매우 무능했음을 잘 보여주었다. 케네디 대통령 임기 초에 CIA가 훈련시킨 반(反)카스트로 쿠바 난민(Cuban exiles) 군대가 피그스 만(灣)을 침공했다가 큰 낭패를 당했는데, 당시 카스트로는 마이애미에 있는 쿠바 난민 집단에 첩자를 심어 놓아서 침공계획을 사전에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피그스 만 사건 후 미국이 다시 침공할 것을 우려한 카스트로는 소련에 대해 미사일을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에 소련은 몇 달 동안에 걸쳐 핵미사일과 방공 미사일, 그리고 그것을 운영할 소련 군대를 선박 편으로 쿠바에 보냈다. 하지만 CIA는 이런 움직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대신 CIA는 로버트 케네디의 지휘 하에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작전(Operation Mongoose)에 몰두하고 있었다.

케네디 형제는 자신들이 소련 지도자와 신뢰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61년 6월 4일, 비엔나에서 케네디 대통령과 흐르시쵸프 소련 수상이 만나서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베를린 문제 등에 대해 이견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케네디는 흐르시쵸프와의 대화에 기대를 가졌다. 케네디 정부의 2인자인 로버트 케네디는 주미 소련 대사관 국방정보국(GRU) 요원인 게오르기 볼샤코프(Georgi Bolshakov)와 가까이 지냈다. 로버트 케네디는 게오르기 볼샤코프를 자기 집으로 종종 초대해서 저녁을 같이 하는 등 유대를 돈독히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인적 유대관계는 소련의 정책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흐르시쵸프는 피그스 만 침공을 보면서 케네디 형제가 순진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1962년 9월 1일, 케네스 키팅(Kenneth Keating 1900~1975) 상원의원(공화당, 뉴욕)은 소련이 쿠바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 미사일을 들여와서 운영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키팅 의원은 자신은 비밀리에 취득한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팅 의원의 주장은 당연히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맥조지 번디(McGeorge Bundy 1919~1996) 안보보좌관은 키팅 의원이 정치적 목적을 갖고 근거 없는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결국 합동참모본부는 고공 정찰기 U-2를 쿠바 상공에 보내서 항공사진을 찍도록 결정했다. 1960년 5월 소련 영공에서 U-2기가 격추된 후 미국은 U-2 비행을 제한해 왔다.

- 사진 : 마틴 셔윈 교수(오른 쪽)와 그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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