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클라크 클리포드

작성일 : 2024-05-26 21:52조회 : 657

클라크 클리포드

미국에는 루스벨트 대통령 임기 말에 ‘White House Counsel’이라고 부르는 직책이 생겨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Counsel'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법률고문‘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만 물론 상근직이다. 2차 대전 중이던 194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기를 지지해 온 정치인이고 뉴욕 주 법원 판사를 지내던 새무엘 로즌먼(Samuel Rosenman 1896~1973)을 Counsel로 임명했다; 로즌먼의 역할은 백악관 정책결정시에 법률문제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었다.

역대 White House Counsel 중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는 로즌먼의 뒤를 이은 클라크 클리포드(Clark Clifford 1906~1998)라고 해야겠다. 클리포드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성장했고 그의 아버지는 철도회사에서 일했다. 클리포드는 워싱턴 대학에서 학부와 로스쿨을 나온 후 세인트루이스에서 성공적인 변호사로 활약했다. 2차 대전 중이던 1943년 그는 징집연령이 지났음에도 해군에 입대해서 중위로 임관했다. 서해안 기지에서 잠시 일하다가 백악관 해군 보좌관실로 차출되어 대령으로 벼락 승진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고 트루먼이 대통령이 되고 2차 대전이 끝나가자 해군 보좌관이던 제독은 원대복귀를 하고 루스벨트의 법률고문이던 로즌먼이 사임하자 클리포드는 그야말로 관운(官運)이 터졌다. 트루먼은 자기처럼 미주리 출신이고 키가 크고 인물이 좋으며 학력이 좋은 클리포드를 법률고문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해서 불과 3년 만에 클리포드는 예비역 해군 대령으로 퇴역하고 백악관 법률고문이 됐으니 사람의 일생은 운(運)도 따라야 함을 알 수 있다.

클리포드는 당시 문제였던 철도 파업을 협상으로 해결해서 트루먼의 신임을 샀다. 그의 아버지가 철도회사에서 일을 해서 그는 철도를 잘 알았다. 또한 그는 트루먼 대통령의 연설문을 기초했고, 부처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트루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클리포드는 모스코바의 미국 대사관에 있던 조지 케난(George F. Kennan 1904~2005)이 보낸 장문의 비밀전보를 참고해서 소련의 팽창주의에 대항하는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극비 보고서를 만들어서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는 ‘트루먼 독트린’이 만들어 지는 계기가 되었다.

클리포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데 찬성한 트루먼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당시 미국의 대외정책을 책임지고 있던 조지 마셜 국무장관 등 외교 브레인들은 이에 반대했다. 트루먼은 이 문제를 다루는 백악관 회의에서 클리포드가 뒷받침한 정연한 논리 덕분에 조지 마셜의 반대를 극복하고 유대인 국가 창설을 지지해서 이스라엘이 탄생할 수 있었다. 클리포드는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루먼을 위한 전략을 세워서 트루먼은 불리한 형세를 반전시켜서 승리할 수 있었다.

1950년 초 클리포드가 사의를 표하자 트루먼은 무슨 자리든 만들어 주겠다고 만류했으나 그는 물리치고 사임했다. 정부에서 7년 동안 일하면서 수입이 너무 없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워싱턴 DC에 로펌을 차렸다. 그 후 그는 백악관 및 연방정부와 가장 잘 통하는 변호사로 이름이 나서 대기업과 유명인사들이 그의 로펌에 줄을 섰다.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클리포드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神)과 대화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68년 초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2009) 국방장관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사임하자 존슨 대통령은 클리포드에게 국방장관을 맡아주기를 부탁했다. 당시는 북베트남군의 대규모 공세(구정 대공세)에 대해 미군이 반격을 가하고 있을 때였고, 베트남 주둔군 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은 미군 20만 명 증파를 요청했다. 당시 남베트남에는 미군 50만 명이 있었는데 20만 명을 더 보내 달라고 한 것이다. 클리포드 장관은 불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리고 베트남 전쟁은 ‘끝없이 빠지는 수렁’ 같다고 언급했다. 존슨 행정부가 끝나고 닉슨 대통령이 취임하자 클리포드는 자신의 로펌으로 돌아갔고 다시는 공직을 맡지 않았다.

클리포드의 로펌은 영향력이 너무 커서 결국 문제를 일으켰다. 1991년 법무부는 아랍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BCCI라는 은행이 워싱턴의 큰 은행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을 밝혀내고 이사회 회장인 클리포드를 기소한 것이다. BCCI 스캔들은 큰 사건이었고 클리포드는 평생 이루어 놓은 명성을 훼손하고 말았다. 말년의 그는 잘못을 인정하고 연방정부에 벌금을 내기로 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년 후에 92세 생일을 앞두고 사망했다. NYT 등 신문들은 그의 부고를 다루면서 그의 찬란한 업적 못지않게 BCCI 사건에 대해 상세하게 언급했다. 클리포드를 기소한 법무부 형사부장은 나중에 FBI 국장을 지내고 특별검사로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관련 스캔들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Robert Mueller 1944~)였다. 사람은 과욕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명예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사진 (1) : 국방장관 시절, 존슨 대통령과 함께. 1968년.
- 사진 (2) : 해군 대령 시절 트루먼을 수행하고 항공모함을 방문한 클리포드, 트루먼 뒤쪽 키가 큰 사람이 클리포드.
- 사진 (3) : 백악관 법률고문 시절, 트루먼 대통령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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