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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나트라 <My Way>
작성일 : 2024-06-01 20:08조회 : 404


시나트라  <My Way>


얼마 전에 용산에서 물러나는 수석비서관 이임식을 하면서 프랑크 시나트라가 불러서 유명한 <My Way>를 연주하는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기가 막혀서 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 노래가 윤석열한테 위안을 주었을 듯하다. 대통령이 지지도가 하락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올려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지지도가 오르지 않으면 “지지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럴 때 위안을 주는 노래가  <My Way>일 것이고, 그래서 비서관 퇴임식을 하면서 <My Way>를 연주하도록 했을 것이다. 사실 요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은 ‘윤석열 방식’(‘Youn's Way')이다.

1969년에 나온 <My Way>는 세계적인 히트곡인데, 따라 부르기가 쉬워서 가라오케/노래방 노래로도 인기다. 흔히 <My Way>를 “나는 나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보다 정확히는 “내 인생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지나온 우여곡절 많았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도 이런 가사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겠다.

프랑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1915~1998)가 노년에 무대에서 <My Way>를 부르는 모습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연유로 노년에 접어든 사람들이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들으면 더욱 실감이 나기도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장례식장에서 <My Way>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죽음을 앞두고 자기 장례식에서 <My Way>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My Way>는 원래는 프랑스 노래인데, 폴 앵카(Paul Anka 1941~)가 영어 가사를 만들어서 시나트라에게 주었다. 작곡과 작사에도 천재적 소질이 있던 폴 앵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린 영화 <The Longest Day> 노래로도 유명하다. 폴 앵카는 <My Way>는 시나트라에게 걸맞는 노래라고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시나트라는 이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뉴저지 이탈리아 타운의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서 결국 가수와 배우로 성공했으나 폭력성과 마피아 관련 소문, 그리고 이혼과 결혼을 반복한 복잡한 여자관계 등으로 얼룩진 자기 인생을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나트라가 좋아해서 공연할 때면 불렀던 노래는 1964년에 나온 <My Kind of Town (Chicago Is)>이었다. 그런데 시나트라는 시카고와는 큰 관계가 없다. 시나트라는 뉴저지와 뉴욕에서 가수로서 출발했고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를 기반으로 배우와 공연자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시나트라는 케네디 부자(父子)와 가까웠다. 하지만 그가 연예활동과 카지노 사업에서 성공하게 된 배경은 시카고 마피아 샘 지앙카나(Sam Giancana 1908~1975)와 관련이 있다. 시나트라의 전기를 펴낸 키티 켈리(Kitty Kelley)에 의하면, <My Kind of Town>은 샘 지앙카나에 대한 시나트라의 헌사(獻詞)라는 것이다.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도 거론되는 샘 지앙카나는 1965년에 기소됐고 1년 후 멕시코로 도망가서 오랫동안 살았다. 지앙카나는 멕시코에 살면서 중남미에 사업을 확장시켰다. 그러다가 1974년 여름에 미국으로 추방되어 시카고로 돌아왔고, 하원 암살조사특위 출두를 앞두고 자택에서 처참하게 살해됐다. 시나트라는 마릴린 먼로의 죽음과 케네디 암살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겠으나 그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을 마쳤다. 

민주당원인 시나트라는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샘 지앙카나는 케네디를 지지한 정도가 아니라 시카고에서 부정투표를 지휘해서 케네디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시나트라는 케네디 취임식 전야제 행사를 조직했다. 하지만 케네디가 암살되고 지앙카나가 멕시코로 망명한 후에 시나트라는 민주당 당적을 정리했다. 1972년 대선을 앞두고는 공화당원이 되어서 닉슨을 위해 헌금을 하고 선거를 도왔다.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시나트라는 로널드 레이건에게 거액을 헌금하고 선거운동을 했으며, 취임식 전야제 축제를 기획했다. 레이건이 대통령 취임식을 치르고 백악관에서 열린 파티에서 시나트라가 낸시 여사와 춤을 추는 유명한 사진이 남아 있다.

- 사진 (3) : 샘 지앙카나와 시나트라. 1930년대 말~40년대 초. 두 사람이 같이 나온 드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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