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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나트라, 닉슨, 애그뉴
작성일 : 2024-06-02 19:52조회 : 406


시나트라, 닉슨, 애그뉴


연예인(entertainer)이 대통령을 지지하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프랑크 시나트라 (1915~1998)처럼 대통령과 깊이 관계를 맺은 경우는 드물다. 시나트라는 존 F. 케네디에서 로널드 레이건으로 갈아탔으니 그것도 기록적인 경우다. 시나트라와 케네디와의 관계,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파탄이 났는지는 앞서 설명한 바 있다. 이번에는 시나트라가 레이건을 지지하게 되는 과정을 보기로 한다.

시나트라는 그의 전성기이던 1950년대에 LA에서 레이건 부부를 간혹 만났으나 두 사람은 그저 그런 사이였다. 시나트라는 이미 최고의 스타였고, 그의 두 번째 부인은 당대 최고의 미녀이며 톱스타인 에바 가드너(Ava Gardner 1922~1990)였다. 영화배우를 잠시 했다고 하지만 레이건의 부인 낸시(1921~2016)는 그 앞에선 초라한 존재였다. 그 시절에 레이건 부부가 시나트라가 운영하던 이탈리아 레스토랑 푸치니(Puccini)에서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레이건이 1966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승리할 가능성이 적다고 보았다. 민주당 현직 주지사 팻 브라운(Pat Brown 1905~1996)도 자신이 당연히 3선에 성공하는 줄 알았다. 팻 브라운과 가까운 시나트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브라운의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브라운은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그 때 시나트라는 레이건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달았다. 

대통령 임기 중간에 있는 중간선거는 여당한테 불리하지만 1970년 11월 중간선거 결과는 닉슨 대통령한테 특히 실망스러웠다. 공화당은 상원 의석을 2석을 늘려서 민주당 54석, 공화당 44석이 됐으나 하원에선 11석을 잃어버려서 민주당 255석, 공화당 180석이 되고 말았다. 주지사 선거에선 공화당은 11개를 잃어버리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 때 조지아에선 지미 카터가 주지사에 당선됐고 캘리포니아에선 로널드 레이건이 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상원의원에 도전했던 조지 H. W. 부시는 실패했다. 닉슨 대통령은 낙담한 부시를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해서 자신이 정계에 입문할 때 부시의 아버지한테 받은 은혜를 갚았다.

4년 전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팻 브라운을 지지했던 프랑크 시나트라는 이번에는 로널드 레이건 주지사를 지지했다. 열성적인 민주당원인 시나트라가 레이건을 지지해서 모금운동에 나서고 자신도 적잖은 돈을 레이건 선거본부에 기부해서 큰 화제가 됐다. 그럼에도 시나트라는 캘리포니아 국무장관은 민주당 후보 제리 브라운을 지지했고 공화당의 진보성향인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와 존 린지 뉴욕시장을 지지해서 민주당 후보를 무조건 지지해 온 할리우드의 전통에서 벗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나트라는 닉슨을 싫어했다.

시나트라는 스피로 애그뉴(Spiro Agnew 1918~1996) 부통령과 사귀어서 골프를 빈번하게 같이 치고 애그뉴는 휴가를 팜 스프링스의 시나트라 저택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아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메릴랜드 주지사를 지내다가 닉슨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된 스피로 애그뉴는 메릴랜드 밖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닉슨은 애그뉴 부통령에게 공화당의 당내 보수파 모임에 내 보내서 그들의 지지를 유지하는 정도의 역할만 주어서 애그뉴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시나트라는 공화당 정부 아래서 자기를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애그뉴에 접근했고, 애그뉴는 시나트라가 베푸는 온갖 편의에 그만 빠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골프 친구이자 술친구로 지냈다. 시나트라는 이태리계이고 애그뉴는 그리스계라서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도 있었을 것이다. 

1971년에 들어서자 시나트라의 새 음반 판매는 눈에 띄게 저조해졌다. 시나트라는 이제 노년층에게만 인기가 있고, 젊은츰은 새로운 장르 음악을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55세 나이에 접어든 시나트라는 은퇴를 선언하고 6월에 은퇴기념 콘서트를 열기로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은 시나트라가 과연 은퇴를 할까 하고 믿지를 않았다. 시나트라는 자신의 음반과 영화에서 나오는 수입과 공연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큰돈을 벌었고 그의 회사 ‘시나트라 엔터프라이즈’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6월 13일 LA 에이먼슨 공연장에서 열린 시나트라 은퇴 음악회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인사말을 하고 시나트라는 ‘I’ve Got you Under My Skin', ‘Fly Me to the Moon' 등 자신의 노래를 불렀고 자신의 여정을 나타내는 'My Way’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Angel Eyes'를 부른 후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연기를 뿜으면서 술집 노래로 시작한 자신을 이야기하면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열렬하게 박수를 보낸 청중에는 로널드 레이건 부부와 스피로 애그뉴 부부, 그리고 헨리 키신저 안보보좌관이 있었다.
 
1971년 들어서 시나트라는 좋은 일을 많이 했다. 언론에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시나트라는 몇 천 달러에서 1만 달러에 달하는 돈을 선뜻 보내서 사람들을 감격시켰다. 이런 일이 잦아서 그는 마치 수호천사 같았고, 그로 인해 민간단체가 주는 상(賞)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시나트라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는 언론인에게는 면전에서 모욕을 하는 등 자기 감정을 자제하지 못했다.

1972년 대선을 앞두고 시나트라는 닉슨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닉슨 선거본부에 53,000 달러를 기부했다. 대선 운동기간 중에 시나트라는 애그뉴 부통령과 함께 전국을 돌면서 유세를 했다. 이러한 시나트라의 파격적인 행보는 주변에서도 놀라워했고 할리우드에선 이변(異變)이었다. 1973년 4월 17일,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한 이탈리아 총리 안드레오티 부부 환영 오찬에 시나트라를 초청했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도 백악관에 정식으로 초청받지 못했던 시나트라로선 감개무량한 일이었다.

시나트라는 자기 골프 친구인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1976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으나 워터게이트 문제로 미국 전체가 시끄럽던 1973년 10월, 애그뉴가 메릴랜드 주지사 시절에 그 지역 사업가들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았고 부통령이 된 후에도 그랬음이 밝혀져서 사임하고 말았다. 사임 후에 애그뉴는 벌금과 세금 등으로 파산 상태였다. 시나트라는 급한대로 3만 달러를 애그뉴에게 주었고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20만 달러를 빌려주었다. 애그뉴는 시나트라 덕분에 이런저런 사업을 해서 재기했고 시나트라로부터 빌린 돈을 갚고 시나트라가 살고 있는 팜 스프링스 근처로 이사를 가서 골프를 치면서 여생을 보냈다.

- 사진 (1) : 시나트라 은퇴 공연. 1973년 6월 LA.
- 사진 (2) : 시나트라와 닉슨, 1972년 6월.
- 사진 (3) : 애그뉴와 시나트라. 팜스프링스 골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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