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시나트라, 먼로, 케네디 부자
작성일 : 2024-06-05 08:07조회 : 132


시나트라, 먼로, 케네디 부자


1950년대 말, 프랑크 시나트라는 ‘의장’(‘Chairman')이란 별명이 따라 다닐 정도로 음악, 영화, 공연, 카지노, 호텔업계에서 막대한 영향을 행사하는 거물이었다. 1960년 11월 대선에선 시나트라는 물론이고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들이 케네디를 지지했다. 1961년 1월 19일 밤에 열린  케네디 취임 축하 전야제는 프랑크 시나트라가 조직했고, 시나트라는 케네디 옆에 앉아서 그의 영향력을 온 세상에 과시했다.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을 반긴 사람은 또 있었다. 샘 지앙카나는 “Now, we own the Presidency"(이제 우리가 대통령직을 장악했다)라고 하면서 좋아 했다고 한다. 

케네디가 대통령에 취임하던 날 마릴린 먼로는 공보비서 패트 뉴컴과 변호사를 대동하고 멕시코에 도착해서 아서 밀러와의 이혼 수속을 끝냈다. 뉴욕으로 돌아 온 먼로는 건강도 좋지 않더니 의사의 착오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소동을 겪었다. 1961년 4월 17~20일 CIA가 주도한 피그스 만 침공이 있었고 케네디 대통령이 공군력 동원을 거부해서 침공은 대실패로 끝나고 케네디 정부는 위기에 처했다. 샘 지앙카나 등 마피아들은 피그스 만 작전 실패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카스트로한테 모욕을 당한 케네디 형제는 CIA에게 카스트로를 암살하라고 명령하며 CIA는 이 작전을 마피아에게 하청을 주었다.

마릴린 먼로가 아서 밀러와 이혼을 하고 다시 싱글이 되자 누가 다음에 먼로를 차지하는가가 가십 칼럼니스트들의 관심사가 됐다. 이들은 시나트라를 가장 유력하게 뽑았다. 아서 밀러와 이혼을 해서 좋아하던 반려견을 밀러에게 두고 와서 쓸쓸해 하는 먼로에게 시나트라는 말티즈와 푸들 믹스인 흰색 강아지를 선물로 주었다. 먼로는 이 강아지 이름을 ‘Maf Honey'라고 지었고 간단하게 ’Maf'라고 불렀다. 'Maf'는 ‘마피아’를 줄인 것이니까 먼로는 시나트라가 마피아와 한 통속임을 알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해 8월 먼로는 Maf를 데리고 LA로 돌아와서 베벌리 힐스의 도헤니 드라이브에 있는 아파트에 정착했다.
 
도헤니 드라이브의 아파트에는 먼로의 오랜 친구 지니 칼멘(Jeanne Carmen)과 시나트라의 비서 글로리아 러벌(Gloria Lovell)이 살고 있어서 먼로는 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먼로는 지니 칼멘에게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이야기하고 지냈다. 먼로가 죽자 칼멘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애리조나로 급히 도망가서 이름을 바꾸고 20년 동안 숨어 살았다. 글로리아 러벌은 먼로가 죽은 후 홀로 남은 Maf를 맡아 키웠다. 
 
시나트라는 LA에 정착한 먼로를 챙겼다. 그해 8월 말, 시나트라는 큰 요트를 빌려서 베벌리 힐스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로마노프 부부와 딘 마틴 부부, 그리고 먼로와 함께 며칠 동안 카탈리나 섬 주변 태평양을 유람했다. 호화 요트에서 며칠을 같이 보낸 글로리아 로마노프는 그 때 시나트라와 먼로는 부부처럼 보였다고 나중에 기자에게 이야기했다. 

그해 9월 시나트라는 케네디 부자(父子)로부터 은밀한 초대를 받았다. 초대라기 보다는 시나트라가 요청한 면담을 케네디 부자가 받아드린 것이다. 시나트라는 케네디 취임 전야제 행사를 기획했음에도 그 후 백악관 공식행사에는 초대를 받지 못했다. 시나트라가 마피아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을 뿐더러 재클린이 시나트라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재클린은 시나트라가 할리우드 여배우를 케네디에게 맺어 준다고 생각했다. 9월 23일, 시나트라는 케네디의 총무비서 데이브 파워스의 안내로 비공개 출입구를 통해 백악관으로 들어와서 내부를 둘러보고 로즈가든을 보면서 혼자 와인을 마셨다. 

그 다음날 시나트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 조셉 케네디가 보내 준 케네디 가족 자가용 비행기 ‘캐롤린’을 타고 케이프코드로 향했다. (‘캐롤린‘은 1960년 대선에 나서는 아들을 위해 조셉이 사준 컨베이어 중형 비행기로, ’캐롤린‘은 케네디의 딸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시나트라는 조셉 케네디에게 줄 선물로 이탈리아 와인,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젤라또) 등을 잔뜩 갖고 출발했다. 히아니스포트의 케네디 저택에 도착한 시나트라는 조셉 케네디의 따듯한 환영을 받았다. 다음날 케네디 대통령도 히아니스포트에 도착해서 이들은 가족 요트 ’허니 프리츠'(Honey Fritz)를 타고 대서양 근해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Fritz는 조셉의 장인이며 보스턴 시장을 지낸 피츠제랄드의 약칭이다.)

시나트라는 자기가 소설 ‘The Manchurian Candidate'를 영화로 만들고 주연을 맡고 싶은데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아서 크림(Arthur B. Krim 1910~1994) 회장이 반대한다면서 크림에게 압력을 가해 줄 것을 케네디에게 부탁했다. 아서 크림은 이 소설 내용이 케네디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서 영화로 만드는데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소설을 읽은 케네디 대통령은 민주당 재정위원장이기도 한 아서 크림에게 전화를 걸어서 시나트라가 이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다.

미군 병사 레이먼드 쇼가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에 포로로 잡혀서 만주에 있는 수용소에 있다가 미국에 돌아와서 명예훈장을 받고 유명해졌으나 그는 포로생활을 하면서 세뇌를 당한 상태였고, 그의 어머니는 남편인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만들고 세뇌 당한 아들로 하여금 대통령 후보를 저격토록 해서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며, 이런 음모를 추적하는 정보 장교(프랑크 시나트라)의 맹활약을 그린 흑백영화 <The Manchurian Candidate>는 쿠바 미사일 위기 중인 1962년 10월에 개봉돼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The Manchurian Candidate>는 2004년에 댄젤 워싱턴과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로 리메이크됐다. 2004년 영화에서 댄젤 워싱턴이 맡은 역할이 1962년 영화에서 시나트라가 맡은 역할이었다.

시나트라가 해결해야 할 매우 곤란한 숙제는 마피아 수사를 독려하고 있는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였다. 샘 지앙카나는 시나트라한테 이 문제를 케네디 대통령이나 조셉 케네디에게 전달해 주기를 원했다. 시나트라는 이를 직접 전달하기 보다는 피터 로포드나 그의 부인 패트리셔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시나트라는 패트리셔 로포드와 깊은 관계를 맺기도 했다.

1961년 11월 중순,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LA를 방문했다. 케네디는 베벌리 힐튼 호텔에 묵었으며 호텔 연회장에서 약 200명의 지지자와 후원자들이 참석한 리셉션이 열렸다. 임신 중인 재클린은 이번에도 케네디를 따라오지 않았다. 그 때 마릴린 먼로가 케네디와 밀실에서 같이 있는 것이 목격됐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먼로를 보고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날 밤 먼로는 케네디와 뜨거운 시간을 가졌다.

12월 19일, 조셉 케네디는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고 병상에 누워있게 됐다. 조셉 케네디가 쓰러지자 샘 지앙카나는 케네디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지렛대가 없어진 꼴이 되고 말았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케네디 정부의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 때문에 샘 지앙카나는 인내심이 다해가고 있었다.

그해 늦은 가을, 시나트라는 에메랄드와 다이아먼드가 박힌 매우 비싼 이어링 세트를 먼로에게 선물로 주었다. 시나트라의 측근 비서 질리 리조(Jilly Rizzo 1917~1992)에 의하면, 그해 연말 시나트라는 먼로에게 청혼을 했으나 먼로가 거절했다고 한다. 먼로가 선물은 받고 청혼은 거부하자 시나트라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질리 리조는 전했다. 지니 칼멘 등 먼로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먼로는 케네디가 재클린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보았다.

- 사진 (1) : 태평양 유람 중인 요트에서 시나트라와 마릴린 먼로. 1961년 8월 말.
- 사진 (2) : <The Manchurian Candidate>에 정보장교로 나온 시나트라.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