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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나트라와 마릴린 먼로
작성일 : 2024-06-06 07:46조회 : 170


시나트라와 마릴린 먼로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자신이 상원 특별조사위원회 법률고문을 지낼 때 묵비권을 행사해서 자기를 무시한 마피아 보스들을 상대로 강도 높은 압력을 가했다. 특히 뉴올리언스 보스인 칼로스 마르셀로(Carlos Marcello 1910~1993)는 미국민 아니어서 해외로 추방하는 등 감정적인 조치를 취했다. 1961년 한해 동안에는 칼로스 마르셀로와 트럭노조(팀스터 유니언) 대표 지미 호파(Jimmy Hoffa 1913~1975)를 상대로 벌이던 수사는 서서히 확대되어 가고 있었다. 케네디 부자(父子)와 잘 통하는 샘 지앙카나(Sam Giancana 1908~1975)는 다른 보스들로부터 어떻게 해보라는 부탁을 받았고, 지앙카나는 시나트라를 통해서 케네디 부자에게 이런 뜻을 전달하고자 했다. 1961년 12월 중순에 조셉 케네디는 뇌졸중으로 쓰려졌고, 시나트라를 통한 로비는 별다른 효과가 없자 샘 지앙카나는 매우 실망했다. 

이런 와중에 시나트라가 케네디 대통령과 멀어지는 계기가 생겼다. 1962년 3월 23~25일 동안 케네디는 팜 스프링스를 방문해서 부근에 사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만나는 일정을 세워 놓고 있었다. 케네디는 팜 스프링스에 있는 시나트라의 저택에서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3월 22일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케네디를 만나서 케네디가 종종 만나는 주디스 캠벨(Judith Campbell Exner 1934~1999)이 샘 지앙카나의 정부(情婦)라면서 미국 대통령이 마피아 보스와 여자를 공유하면 되겠냐고 이야기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인 케네디는 동생 로버트를 불러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다음날 팜 스프링스에 갈 때 시나트라의 집에 머물러선 곤란하다고 형에게 이야기 했다.

케네디는 피터 로포드에 전화를 걸어서 시나트라 저택이 아닌 다른 집을 알아보라고 했고, 피터 로포드는 시나트라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역시 팜 스프링스에 있는 빙 크로스비의 저택에서 케네디가 묵을 수 있도록 했다. 케네디가 오는 줄 알고 돈을 들여서 집을 고친 시나트라는 하루 전에 이런 연락을 받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다. 이로서 시나트라와 케네디와의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피터 로포드는 3월 24일 저녁에 마릴린 먼로와 함께 팜 스프링스에 도착했고 그 날 밤 먼로는 빙 크로스비 저택에서 케네디와 긴 밤을 보냈다.

5월 19일, 먼로는 뉴욕 매디슨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케네디 생일 축하 겸 민주당 모급행사에서 'Happy Birthday, Mr. President'를 불러서 빅뉴스가 됐다. 그날 밤 먼로는 케네디와 몇 시간 동안 함께 보냈다. 5월 24일, 에드가 후버 FBI 국장은 먼로에 대해 무엇인가를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날부터 먼로는 케네디와의 연락이 두절됐고, 이어서 로버트 케네디로부터 냉랭한 전화 통보를 받았다. 후버 국장은 먼로가 케네디 형제로부터 들은 중요한 국가기밀을 멕시코시티에 있는 미국인 좌파 망명객들에게 이야기했다고 보고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해서 먼로와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는 파탄이 났다.   

그 해 여름 시나트라는 자신이 운영하는 Cal Neva 카지노 호텔에서 먼로를 7월 14~15일 주말과 28~29일 주말에 두 차례 만났다. 두 번 모두 먼로는 피터 로포드와 함께 시나트라의 전용 비행기로 Cal Neva를 다녀갔다. 특히 28~29일 주말에는 샘 지앙카나가 Cal Neva에 다녀갔음이 나중에 확인됐다. 7월 28~29일 주말에 Cal Neva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아마도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8월 4일 자정 가까운 시간에 먼로는 사망했다. 8월 5일 새벽 4시 조금 넘어서 정신과 의사 랠프 그린슨이 경찰에 먼로가 죽었다고 전화로 신고할 때 먼로의 변호사인 밀튼 루딘(Milton Rudin 1920~1999)도 먼로의 집에 있었다.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루딘은 오랫동안 시나트라의 법률문제를 대리하고 또 시나트라에게 조언을 해온 시나트라의 심복(心腹)이었다.

밀튼 루딘은 먼로에게 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받고 먼로의 집으로 급히 달려가서 사후 대책을 의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딘이 시나트라에게 먼로가 살해됐다고 보고했다고 시나트라 주변 인물들이 나중에 증언했다. 시나트라는 직접 또는 루딘을 통해서 먼로의 죽음을 샘 지앙카나와 존 로셀리(John Roselli 1905~1976)에게 급히 알렸을 것이다. 존 로셀리는 자신의 정부(情婦)이며 먼로의 친구인 지니 칼멘(Jeanne Carmen)에게 생명이 위험하니까 급히 피하라고 했고, 칼멘은 애리조나로 도망가서 20년 동안 신원을 숨기고 살았다.

시나트라는 먼로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오랫동안 친했고 때로는 서로 사랑을 나누었으며, 청혼까지 했던 사이였으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먼로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밀튼 루딘으로부터 전해들은 시나트라는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시나트라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 후 시나트라는 먼로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haunted)고 돌아보았다. 

탁월한 저격수이며 암살의 귀재(鬼才)인 존 로셀리는 마이애미를 드나들면서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CIA 공작을 현장에서 지휘했다. 플로리다 마피아 보스인 산토 트라피칸트(Santo Traffiicante Jr. 1914~1987)는 샘 지앙카나, 칼로스 마르셀로, 그리고 존 로셀리와 막역한 사이였다. 산토 트라피칸트는 아바나에서 카지노 호텔을 운영하다가 카스트로 혁명을 맞았다. 그는 카스트로가 집권을 해도 카지노 호텔은 건재할 줄 알고 그대로 아바나에 머물다가 쿠바 혁명군에게 잡혀서 처형당할 뻔 했다. 트라피칸트는 카스트로에게 거액의 몸값을 달러 현찰로 지불하고 풀려났는데, 카스트로에게 줄 현금을 들고 아바나에 온 사람이 ‘케네디 암살범’ 리 하비 오스월드를 사살하는 잭 루비(Jack Ruby 1911~1967)였다.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시나트라는 사흘 동안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시나트라의 작은 딸이 나중에 증언했다.

- 사진 (1) : 시나트라와 마릴린 먼로. 1960년 Cal Neva 카지노 호텔.
- 사진 (2) : 먼로, 시나트라, 피터 로포드. (오른쪽부터.) 피터 로포드 자택. 19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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