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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나트라 1971~1979
작성일 : 2024-06-09 18:28조회 : 93


시나트라 1971~1979

배우나 가수가 은퇴를 선언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기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은퇴를 당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시나트라가 55세 나이로 1971년 봄에 은퇴를 선언하고 그해 6월에 LA에서 은퇴공연을 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더 이상 새 앨범을 내거나 공연을 하지 않고 지내던 시나트라는 1972년 대선에서 닉슨을 지지했다. ‘케네디 민주당원’이던 그가 ‘닉슨 공화당원’이 된 것이다. 1973년 들어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수렁에 빠졌고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은 다른 스캔들로 그해 10월 사퇴했다.

시나트라의 은퇴는 2년을 가지 못했다. 1973년 들어서 그는 새 앨범을 냈고 그해 크리스마스에선 라스베이거스 사하라 호텔에서 공연을 했다. 그리고 시나트라는 경영진이 새로 들어선 시저스 팰리스 호텔과 매주 40만 달러를 받고 공연하는 계약을 맺었다. Cal Neva 카지노 때문에 라스베이거스를 떠난 그가 10년 만에 컴백한 것이다. 그리고 시나트라는 미국내 10개 도시 순회공연을 했고, 계속해서 유럽 공연을 시작했다. 영국 공연은 성공했으나 독일 언론이 시나트라에 대해 비판적 기사를 쓰자 그는 독일 공연을 취소했다. 시나트라는 자신에 대해 비판적은 언론을 신랄하게 비난해서 더 큰 논란을 일으켰고, 호주에 도착해서 기자들과 충돌한 끝에 공연을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1974년 들어서 시나트라는 뉴욕과 런던에서 공연을 성공리에 마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즈음 시나트라는 골프 친구인 이웃집 유부녀 바버라(Barbara 1926~2017)와 시귀며 1976년 여름에 결혼했다. 시나트라는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이고 바버라는 시나트라의 네 번째 부인이다. 이듬해 1월 초, 시나트라의 어머니 돌리 여사가 팜 스프링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소형 전세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했다. 시나트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시나트라의 어머니는 새 며느리 바버라를 싫어해서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고 전세 비행기로 가다가 사고가 났다..

1975년 6월 19일, 샘 지앙카나(Sam Giancana 1908~1975)가 시카고 근교 자택에서 밤에 혼자 요리를 하던 중 괴한의 총을 맞고 처참하게 살해됐다. 1965년에 법정모욕죄로 유죄판결을 받고 1년간 복역한 후 멕시코로 피신해 살던 지앙카나는 1974년 여름에 멕시코 정부에 의해 추방돼서 시카고롤 돌아왔다. 지앙카나는 CIA의 불법활동을 조사하던 상원 위원회에의 출두를 앞두고 있었다. 지앙카나는 상원 위원회에서 증언하지 못했으나 존 로셀리(John Rosselli 1905~1976)는 6월 24일과 9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CIA의 카스트로 암살계획에 대해 비공개 증언을 했다.

지앙카나가 살해되자 존 로셀리는 LA를 떠나서 마이애미로 옮겨 갔다. 1976년 4월 23일, 존 로셀리는 상원 위원회에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관련해서 비공개 진술을 했다. 3개월 후 위원회는 로셀리를 다시 소환했으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8월 7일, 마이애미 부근 바다에서 떠 오른 드럼통에서 절단되어 부패한 로셀리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렇게 해서 프랑크 처치 상원의원이 이끌었던 조사위원회는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를 운영했던 시나트라는 1960년대 초까지 두 사람과 가까이 지냈다. 케네디 암살을 연구한 사람들은 지앙카나와 로셀리가 케네디 암살에 연루되어 있다고 본다.

1976년에는 뉴욕 웨스트체스터에 새로 지은 카지노 호텔이 파산한 사건과 관련해서 시나트라가 연루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와서 시나트라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 카지노는 마피아가 세운 것이라서 FBI가 은밀하게 수사를 하고 있었는데, 시나트라가 거기서 공연을 허고 거액의 공연료를 받게 되어 있어서 의심을 샀던 것이다. 1979년 초에 관련자들은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시나트라 이름이 빈번하게 언론에 나와서 시나트라는 큰 곤란을 겪었다. 시나트라는 이런 것을 불식하기 위해서 라스베이거스에 병원과 박물관을 세우는 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그러면서도 시나트라는 자신을 이유없이 헐뜯었다면서 언론, 특히 진보성향 언론인을 비난하는 발언을 이어나가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1980년 들어서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무르익자 시나트라는 로널드 레이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 사진 : 시나트라와 부인 바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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