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법방해죄

작성일 : 2024-06-25 18:05조회 : 525

사법방해죄

채 상병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정황을 보자면 대통령, 국방장관, 해병대 사령관, 사단장으로 이어지는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직권남용죄를 구성한다고 보는데, 윤석열이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있으면서 남용한 것이 바로 직권남용죄임을 생각하면 세상이 돌고 도는 것 같다. 그러나 직권남용죄는 배임죄와 더불어서 법전 속에서 잠을 자고 있어야 하는 조항이다. 직권남용죄와 배임죄를 적용하면 공무원과 기업인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뇌물을 동반하지 않는 직권남용과 배임은 형법전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 대신 우리가 도입해야 하는 범죄가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다. 사법방해죄는 미국 연방법과 모든 주법에 규정되어 있다. 위증과 위증교사도 넓은 의미로 보면 사법방해이지만 위증과 위증교사는 별도 처벌조항이 있기 때문에 사법방해라고 하면 수사와 기소, 그리고 재판에 이르는 형사사법을 저해하는 그 외의 모든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증인을 살해하거나 협박하거나 회유하는 행위는 별도로 보다 엄중하게 처벌하는 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사법방해라고 하면 그 외 행위를 의미한다.

사법방해는 범죄 피의자나 피고인 또는 증인만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대배심이나 의회의 조사위원회가 어떤 불법사건에 대해 문서제출을 요구할 것을 예상하고 몰래 파기하는 행위도 사법방해다. 법무부 장관이나 차관이 일선 검사장이 수사하는데 대해 압력을 가하면 그것도 물론 사법방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무차관, 차관보, 그리고 법무장관이 모두 사직해 버린 이유는 백악관의 지시를 들었다간 사법방해죄를 구성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이란 콘트라 사건에선 백악관 안보실 참모이던 올리버 노스 중령이 사법방해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닉슨이 대한 하원 법사위원회의 탄핵 소추 의결도 그 가장 큰 근거가 사법방해였다. 또 다른 근거인 권력남용(abuse of power)은 형사처벌 대상인 범죄가 아닌데 비해 사법방해는 엄연한 범죄다.

연방법은 사법방해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실제로 사법방해죄가 적용된 경우에 대체로 징역 1~2년이 선고되는데, 사법방해죄를 범할 수 있는 공무원은 대부분 변호사이며 사법방해죄로 벌금형만 선고 받아도 변호사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에 감히 사법방해가 될 만한 일을 저지르는 멍청한 바보는 없다.

사법방해 보다는 위증이나 위증교사가 죄질이 훨씬 나쁨은 당연하다. 1982년 증인보호법은 증인 교사 및 조작(witness tempering)을 20년 이하 징역으로 처벌한다. 증인을 살해하거나 상해하면 30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한다. 위증을 이렇게 무겁게 처벌하는 이유는 증인이 성경에 손을 얹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하기 때문이다. 증인은 자기에 불리한 증언을 거부할 수 있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마피아나 마약 카르텔을 다룬 영화를 보면 증인이 될 만한 사람을 미리 죽여 버리거나 가족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증인으로 하여금 위증을 하도록 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증인을 보호하고 위증교사자를 엄격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법방해죄를 도입하기 위해선 검찰청법에 규정되어 있는 법무장관의 구체적 사건 지휘권을 삭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검찰청법에 규정되어 있는 기소재량주의를 삭제해서 기소권 남용을 억제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 등 관련 문제는 매우 복합적이고 여러 쟁점이 결부되어 있는데, 문재인 정부의 어설픈 개혁으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권하에서 직권남용죄를 남용한 검사가 대통령이 됐으니 그 책임은 도대체 누구한테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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