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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소송

작성일 : 2024-09-05 14:36조회 : 214

의료 소송

외과, 응급의료 등 이른바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손꼽는 것이 민·형사 소송 리스크다. 소아과 전문의를 기소해서 유죄판결을 받게 한 사건, 산부인과 의사에게 15억 원 배상판결을 내린 사건이 대표적이고 환자의 고소 고발로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은 의사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듯하다. 응급의학을 기피하는 주된 원인 중의 하나가 이 같은 사법리스크 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2007년에 로스쿨 제도를 도입할 때에 노무현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변호사가 늘어나면 국민이 값싸게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즈음 미국에선 변호사가 너무 많아서 소송 남용이 심각하다는 논의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서 공화당은 소송개혁을 주된 아젠다로 내세웠을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외에도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했으나 후자는 실패해서 예과 2년과 본과 4년으로 돌아갔다.

오늘날 변호사와 의사 시장의 일그러진 모습은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에 널려 있는 미용성형/피부과 의원 광고와 이혼/상속 변호사 광고를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 변호사는 너무 많아서, 그리고 의사는 필수의료의 저수가(低酬價)와 사법 리스크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생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검사를 늘려서 이제는 별의별 사안을 기소해서 법정으로 끌고 가는 현상이 나타났다. 법률가 과잉이 우리 사회를 ‘법률 지옥’으로 만들었다.

어느 나라이든 의료 사고는 변호사들의 타깃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독특한 점은 의료소송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분야가 모두 저수가에 시달리는 필수의료라는 점이다. 그런 수가를 받아서는 원가도 안 되기 때문에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소송에 대한 책임보험을 들거나 변호사 비용을 축적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병원 문턱이 낮은 것은 좋으나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편승하는 변호사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큰 병원은 그 규모와 시설이 어마어마하다. 응급실도 마찬가지이고 전문의사도 많다. 그런 병원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은 공적 보험(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과 민간보험이다. 나이가 많은 노인과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면 민간 건강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결코 만만치 않다. 직장이 있으면 직장 단위로 보험을 들기 때문에 보험료가 그래도 감당할 만하다. 그래서 해고를 당한 실업 상태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면 파산하기 쉽다. 연방정부의 공적 보험은 존슨 대통령 시절인 1965년에 도입했으나 그 후 공적보험을 확대시키지 못하는 사이에 민간보험이 그 시장을 장악해서 이제는 개혁을 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거대한 병원기업은 막강한 관리능력을 갖고 있고 또한 로펌을 고용해서 자신들이 운영하는 병원과 의료진을 상대로 한 소송에 대응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도 그런 비용이 의료수가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대학병원 등 큰 병원은 저수가로 인해 특실 입원실, 장례식장 같은 부대수입으로 간신히 운영하기 때문에 병원은 의사를 보호할 여력이 없다. 10년 전에 교수 진료에 부가하던 특진료까지 교수들의 특권이라는 이유로 폐지해서 병원운영은 여러 가지로 한계에 봉착한지가 오래인데, 폭발적으로 늘어난 변호사들 때문에 의사들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런 지경이 된지는 오래 됐는데 이번 사태로 비로소 알려지게 됐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 의사들한테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한 장기려 의사를 본받고,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유명해진 앤소니 파우치를 본받으라는 칼럼이 신문에 나오곤 한다. 이런 황당한 칼럼을 쓴 필자나, 이런 글을 지면에 올린 신문이나 그 수준은 똑같다.

아래는 2011년 12월에 주간지에 발표한 서평 칼럼으로, 변호사 과잉으로 인한 문제를 지적한 책을 소개한 글이다. 미국에서 세탁소를 경영하다가 고약한 변호사에 의해 소송을 당해서 변호사비로 10만 달러를 쓰고 파산한 후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 교민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의사들은 이 세탁소 주인이 남의 일 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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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소송, 법률과잉 시대’ (주간경향 2011년 12월 호)

“2007년에 워싱턴 DC의 한 변호사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자기가 맡긴 바지 한 벌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1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변호사는 세탁소가 사기 마케팅을 했으며 잃어버린 바지를 입을 권리를 1200일간 박탈당했고, 다른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위해 매주 렌터카를 빌려야 했다는 이유를 댔다. 2년간 소송 끝에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변호사 경비로 10만 달러를 써야 했던 세탁소 주인은 가게를 닫고 한국으로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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