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故 남재희(南載熙)

작성일 : 2024-09-19 21:04조회 : 251

故 남재희(南載熙)

90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남재희 장관님 빈소를 다녀왔다. 국회 임기 말에 저녁을 한번 모신 적이 있고 그 후에는 코로나 문제도 있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전화를 두어 차례 드리고 뵙지는 못했다. 연세가 있으시고 해서 예상은 했으나 막상 빈소에서 영정 사진으로 뵙게 되니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남 장관님은 나한테 대학 15년 선배이나, 서울대 의예과 2년을 마치고 법대에 입학하셔서 실제로는 2년 더 선배인 셈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남 장관님을 지면을 통해서 알게 됐다. 당시는 조선일보 기자로 해외 동향에 관한 글을 많이 쓰셨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선 신좌파(New Left) 운동과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가 성행했다. 그 때 내가 구독하던 <신동아>에는 이에 관한 글이 많이 실렸는데, 그 중 남 장관님의 글이 가장 생동감이 있었다. (<사상계>가 쇠락 한 후에 <신동아>는 당시 유일한 지성지(知性誌)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가 1970년인데, 1학년은 교양과정으로 머나 먼 공릉동에서 공부를 했다. 교양과정은 고등학교 과목의 재탕이라서 1년 동안 잘 놀았다. 2학년이 되어 동숭동 캠퍼스로 오자 ‘법대 공동체’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우리는 언론인으로는 동아일보의 송건호 기자와 조선일보의 남재희 기자를, 그리고 소설가로는 ‘광장’과 ‘회색인’을 쓴 최인훈을 선배로 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재희 선배가 정부 기관지인 서울신문의 편집국장이 됐다. 솔직히 그 때 실망이 컸다. 나는 그게 무척 궁금해서 2013년 3월에 JTBC <동행>에 남 장관님과 대담을 할 때 그것을 여쭈어 보았다. 그랬더니, 조금 당황하신 표정으로 솔직히 말씀 하셨다. “당시 문공부장관이던 신범식씨가 조선일보 방일영 회장에게 나를 서울신문으로 달라고 하자 방 회장이 그리로 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가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동행> 시리즈는 동영상으로 남아 있다.)

1987년 7월이었다. 6.29 선언으로 의기양양해진 노태우 대표가 각계 인사를 두루두루 만나던 중 30대 교수 4명과 마포의 등심구이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자 해서 그 때 참석한 적이 있었다. 남재희, 심명보, 배성동 의원이 노태우 대표와 같이 자리를 했다. 노태우 대표는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고 세 의원도 그러했다. 대선에선 노태우가 당선됐으나 88년 총선에선 민정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88년 총선에서 남 장관님은 강서에서 당선됐으나 서울대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비례대표를 역임한 배성동 의원은 낙선했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역구가 강원도인 심명보 의원은 본인은 당선됐으나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직을 사퇴했다. 그 선거에서 김종인 박사도 관악구에서 낙선했다. 당시는 야권표가 YS의 통일민주당과 DJ의 평화민주당을 분열돼 있어서 서울에서도 민정당은 의석을 많이 얻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심명보 의원은 얼마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노태우 주변의 이른바 지식인 그룹 중 남재희 장관만 88년 총선에서 살아남았다.

3당 합당으로 여당은 덩치가 커졌으나 야권이 단일화된 92년 총선에선 남 장관님도 패배하고 말았다. 노동장관직을 잠시 거치고 일선 정치에서 물러나신 후에는 기고와 인터뷰를 많이 하셨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한겨레신문과 프레시안에 애정이 많으셨다. 사석에서 장관님은 “어이 이 교수, 근혜양(孃)이 그러면 되겠어”, "재인군(君) 말이야“ 식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오늘 빈소에서 이부영, 김학준 등 그 시대에 언론계에 있었던 여러 분들을 뵈었다. 나한테는 한 세대 10년이 앞선 분들인데, 우리 세대에선 남 장관님이나 이부영, 김학준 같은 수준의 저널리스트가 없는 것 같으니, 그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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