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Dustoff와 간호장교
작성일 : 2024-10-16 10:56조회 : 49
Dustoff와 간호장교
미국은 베트남전 초기에 사이공과 다낭에 큰 병원을 세우고 그 운영을 해군에 맡겼다. 전쟁이 본격화하자 해군 병원함(Hospital Ship)이 베트남 근해에 파견돼서 왔고, 해군은 사이공과 다낭 병원의 운영을 육군에 이관했다. 따라서 육군은 남베트남 곳곳에 있는 후송병원(Evacuation Hospital) 외에도 사이공과 다낭에 있는 병원도 운영을 맡게 됐다.
베트남 전쟁은 헬기 전쟁이었다. 확실한 전선(front lines)이 없고 도로망이 부실한 베트남에서 병력을 이송하는 방법은 오직 헬기였다. 흔히 휴이(Huey)라고 부른 벨(Bell) 항공사의 UH-1은 베트남에서 맹활약을 했다. 베트남의 전투 현장에서 부상을 당한 장병이 나오면 의무병은 지혈과 무통주사 등 응급조치를 취하고 부상자 수송용 헬기(Dustoff)를 호출했다. 흙먼지를 날리면서 착륙을 한다고 해서 ‘Dustoff’라는 불린 환자 후송용(Medievac) UH-1 헬기는 조종사, 부조종사, 의무병, 그리고 대원 1명이 탑승했다. 부상자를 태우기 위해 착륙하는 순간은 매우 위험했다. 다른 헬기와 달리 Dustoff는 M-60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지 않고 대원이 M-16 소총을 갖고 있을 뿐이라서 적군의 공격에 취약했다.
베트남 전쟁 초기인 1962년 봄, 베트남에 파견된 제57 의무 헬기부대는 휴이 헬기 5대를 배정받았다. 이 5대로 베트남 전체를 커버해야 했으나 지휘부는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3대만 갖게 됐다. 1963년 초 베트남 주둔 미군은 16,000명에 달하고 전투가 치열해졌다. 이 때 제57 의무 헬기부대장이던 찰스 켈리 소령(Maj. Charles Kelly 1925~1964)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현장에 헬기를 투입해서 부상자를 후송하기 시작했고 그의 노력에 힘입어보다 많은 헬기를 확보하게 됐다. 자신도 2차 대전 중 부상을 입고 구조를 기다렸던 경험이 있는 켈리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기 위해선 어디든 어느 때이든 우리가 가야 한다”는 Dustoff의 전통을 만들었다.
1964년 7월 1일, 켈리 소령은 헬기를 몰고 부상자를 구출하러 출동했다가 매복중인 베트콩에 저격돼서 전사했다. 켈리 소령의 후임자인 패트릭 브래디(Patrick Brady 1936~) 대위는 켈리의 철학을 이어받아서 부대를 운영했다. 그는 두 차례 베트남 근무 중 2000회 이상 출동을 해서 부상자 5000 여 명을 구조함으로써 명예훈장을 받았다. 소장으로 전역한 그는 회고록 <Dead Men Flying>을 펴냈다.
Dustoff에는 수액, 혈액, 모르핀 등 응급처치에 필요한 의료자원을 갖고 있어서 후송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중상자의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대체로 30분 내에 후송병원에 도착하면 기다리던 의무병과 간호장교가 달려 나와서 부상자를 트리아지(triage) 룸으로 데리고 온다. 이송병원에선 군의관이 돌아가면서 트리아지 당직을 서는데,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어느 부상자를 먼저 수술실로 들여보낼지를 결정한다. 야전병원에는 인턴과 레지던트가 없기 때문에 일반 병원 응급실에서 인턴과 1~2년차 레지던트가 하는 일을 간호사가 맡아서 했다. 이들은 백색 간호사 복 대신 카키 색 군복을 입었다. 유사시에 대비해서 칼빈 소총이나 권총을 배급 받았으나 간호장교가 총을 들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산군은 후송병원을 자주 공격했고 그런 때면 황급하게 참호로 피하거나 실내 바닥에 엎드려야만 했다.
간호장교는 큰 가위로 군복을 잘라내고 부상당한 부위를 씻어내고 소독을 하면 군의관은 부상의 심각성을 판단해서 수술 순위를 정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장병은 간호장교가 돌보면서 임종을 하도록 하고, 급한 부상자 순서대로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수술은 외과 전문의인 군의관과 수술 간호사와 마취과 군의관 또는 마취 간호사로 이루어진 3인조가 담당했다. 미국은 훈련받은 간호사가 마취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후송병원에선 간호사가 마취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미 육군은 마취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킨 간호사를 베트남에 파견했다.
로켓포 등으로 포격을 당하거나 부비 트랩이나 지뢰로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을 해야 했다. 가벼운 총상을 입은 부상자는 이송병원에서 완쾌하면 다시 부대로 복귀하고 긴급한 상황을 넘긴 중상자들은 베트남 근해에 있는 해군 병원함으로 이송하거나 일본이나 본국의 병원으로 이송해서 장기적 치료를 받도록 했다. 가벼운 부상을 입고 이송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본대로 복귀하는 병사를 간호사가 축하해주었는데, 얼마 후에 그 병사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간호사가 오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고 있다.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어서 도착한 부상자, 그리고 팔과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절단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수술에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큰 전투가 벌어지면 한꺼번에 이런 부상자들이 이송되어서 이송병원에선 군의관과 간호장교가 잠을 자지 못하고 수술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서 2차 대전 때에는 현장에서 사망했을 부상 장병들이 생명을 구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20대 초 나이의 젊은 여성에게 특히 힘들었다. 간신히 생명을 건져도 팔 다리를 잃어버려서 삶이 송두리째 바뀐 젊은 병사들을 보살피는 일은 정서적으로 쉽지 않았다. 도저히 살 수 없는 중상자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간호장교의 손을 꼭 잡고 숨을 거두곤 했다. 대부분의 병사는 간호사 보다 나이가 조금 젊어서 마치 동생과도 같았다. 30세 전후의 군의관 보다 간호장교가 병상의 부상 장병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계속)
- 사진 (1) : 부상 장병을 헬기에 싣는 모습
- 사진 (2) : ‘Father of Dustoff'라고 불리우는 찰스 켈리 소령. 전사하기 얼마 전 자신의 헬기 앞에서 찍은 사진.
- 사진 (3), (4) : 후송 병원에서 간호장교.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