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본국으로 돌아온 간호장교들

작성일 : 2024-10-17 06:40조회 : 53

본국으로 돌아온 간호장교들

전투가 소강상태에 있으면 군의관과 간호사들은 베트남 주민들을 상대로 의료 봉사를 했다. 태어나서 의료진을 처음 만나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다. 간호장교들은 베트남 어린이들을 잘 보살폈다. 미군 의료진은 공산군 포로도 인도적 차원에서 치료를 해 주었다. 이에 고마움을 느끼고 미군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해 준 경우도 있었다.

쁠레이쿠 같은 중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병원에는 라오스 접경지대의 고산(高山)에 사는 몬타나드족(族) 고아들이 병원에서 살았다. 몬타나드족은 미군을 도왔기 때문에 북베트남 군의 공격과 보복에 노출돼서 고아가 많이 생겼다. 몸집이 작고 피부색이 가무잡잡한 몬타나드 고아들은 갈 곳이 없어서 후송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살았다. 몬타나드 아이들과 정이 깊이 들어서 본국으로 돌아갈 때 이들을 입양해서 데리고 간 간호사도 꽤 있었다.

20대 초 젊은 여성인 간호장교들은 병원 밖으로 나가는 데는 헌병이 에스코트를 하는 등 조심해야 만 했다. 비교적 안전한 붕타우나 나트랑에선 한가한 시간에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은 고향에 있는 부모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전쟁의 참담한 사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한 간호사의 편지가 신문에 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육군 장교인 약혼자가 베트남에 가게 되자 자기도 자원해서 베트남 후송병원에서 간호장교로 근무하던 중 약혼자가 전사했다는 통보를 받고 비탄에 빠지는 등 전쟁은 수많은 인간적 비극을 초래했다.

간호장교들은 1년을 채우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연장 복무를 하는 경우는 극소수였고 대개는 전역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들은 탄손누트 미군 공항에서 국방부와 계약을 한 민간 항공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같이 타고 온 병사들은 군복을 벗고 간단한 민간복으로 갈아입었다. 살아서 돌아 온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공항에선 육군 담당자가 나와서 귀국한 간호장교에게 전역 증서를 전해주었다. 그것으로 그녀들의 군 복무는 끝이 났다.

간호사들은 중위 계급장과 복무 훈장이 달린 자랑스러운 장교 복장을 하고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환영이 아니라 야유였다. 반전(反戰)시위대는 간호장교에게 ‘살인자’리고 욕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침을 뱉었다. 간호사들은 생명을 구한 자신들을 살인자라고 부르는 분위기에 절망하고 고향에 도착했다. 고향의 부모들은 큰일을 하고 돌아온 딸이 자랑스러웠으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느 동네이든 자식이 베트남에서 전사한 이웃이 있어서 분위기는 침울했다. 간호장교들은 군복과 모자 군화를 창고에 넣고 베트남에서 있었던 일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민간인이 된 이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부분은 자신들의 직업인 간호사로 직장을 구했다.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이들을 훌륭한 응급요원이자 외과 간호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민간 병원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들이 베트남에서 했던 많은 일은 민간병원에선 인턴이나 1~2년차 레지던트가 하는 일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한 중환자를 베트남에서처럼 다루었더니 동생뻘인 젊은 인턴이 그것은 간호사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생한 간호사들도 있었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피투성이 환자를 보고 별안간 헬기 소리와 포성이 들리는 환상을 겪고 응급실 근무를 못하게 된 간호사도 있었다. 반전 정서와 사회의 무관심에 실망해서 다시 간호장교로 복직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됐다. 1981년 1월 20일 취임식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1차 대전에서 베트남 전쟁에 이르는 미국의 전쟁에서 산화한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연설을 했다. 비로소 베트남 전쟁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1982년 11월 베트남 전몰장병 ‘추모의 벽’이 준공됐다. 이 날 베트남에서 복무했던 간호사들도 나와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간호장교 8명의 이름을 찾았다. 이 때 간호사들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나이가 지긋한 참전용사들이 간호사들에게 “Are you Army nurse ?"라고 묻더니 자기가 부상을 당했을 때 당신들이 보살펴 주어서 오늘날까지 살아왔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포옹을 했다. (계속)

- 사진 (1) : 군의관과 함께 베트남 어린이를 진료하는 간호장교.
- 사진 (2) : 영양실조된 베트남 고아를 돌보는 간호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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