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화가가 된 베트남 참전 간호장교
작성일 : 2024-10-21 14:31조회 : 21
화가가 된 베트남 참전 간호장교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정책 결정자들은 동부 엘리트였다. 하버드 대학원장을 지낸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MIT 교수를 지낸 월트 로스토 안보보좌관, 포드 자동차 사장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발탁한 존 F. 케네디는 두 말할 나위 없는 보스턴 엘리트였다. 동년배들이 베트남 정글에서 피와 땀을 흘릴 때 이런저런 이유로 병역을 면탈한 사람들이 그 후 대통령과 부통령이 됐다. 빌 클린턴과 조 바이든은 대학생 병역연기를 최대한 이용했으나 마지막은 불분명한 사유로 병역을 면탈했다. 딕 체니는 대학원을 다니고 아이를 가져서 병역을 피해갔다. 도널드 트럼프는 가짜 진단서로 병역을 회피했다. 그나마 조지 W. 부시는 주방위군 복무를 함으로써 베트남을 가지 않았다.
전쟁의 부담은 보통 사람들의 몫이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간호장교로 베트남에서 2년 동안 근무한 바버라 치미넬로(Barbara Chiminello 1944~)와 그녀의 가족도 그러했다. 바버라 치미넬로는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서 메릴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와 삼촌은 모두 군인 출신이었다. 치미넬로는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작은 가톨릭계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군인 가정 출신인 그녀는 학비를 해결하기 위해 육군 간호장교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는 남자 형제의 대학 등록금을 부담해야 해서 그녀를 돕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해서 치미넬로는 졸업 후 3년간 간호장교로 복무하기로 했다.
베트남 전쟁이 확대되자 군인가족인 치미넬로는 자식들이 입대해서 전쟁터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바버라 치미넬로는 1966년에 나트랑에 있는 이송병원에 배속됐다. 중위로 진급한 그녀는 23세였고, 두 살 위인 오빠 토머스(Thomas Chiminello 1942~1967. 10. 29)가 있었다. 토머스는 헬기 조종사로 베트남에 파견됐다. 토머스 치미넬로 중위는 부상자를 후송하는 Dustoff 헬기 조종사로 누이동생이 있는 나트랑 후송병원에 자주 머물렀다. 누군가 나트랑 병원에서 오빠와 누이동생이 활짝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놓았다. 그리고 바버라는 다른 곳으로 전속 명령이 나서 오빠와 떨어지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바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오빠가 사망한 것이다. 토머스 치미넬로 중위의 Dustoff는 야간에 긴급하게 출동하던 중 악천후를 만나 추락해서 승무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바버라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Dad, I need to tell you something. Tommy is gone.’ 그러자 아버지가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마치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가를 얻은 바버라는 오빠의 시신을 고향으로 갖고 갔다.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베트남 근무를 끝내고 살아 돌아가는 장병들이 들떠 있었다. 바버라는 화물칸에 있는 관(棺) 속에 누워있는 오빠를 생각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향에서 오빠의 장례식을 마친 바버라는 베트남으로 복귀했다. 베트남에서의 복무 기간 12개월이 끝나가고 있을 무렵, 이번에는 바버라의 남동생이 베트남으로 오게 됐다. 동생을 베트남에 두고 자기만 집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 바버라는 연장복무를 신청해서 쁠레이크 후송병원에서 1년 동안 더 근무했다. 전쟁 부상자를 돌보는 후송병원에 2년 동안 연속으로 복무하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남동생은 무사하게 베트남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바버라도 전역을 했다.
고향에 돌아 온 바버라는 간호사를 더 이상 하지 않고 미술대학에 입학해서 그림을 공부했다. 그리고 워싱턴과 뉴욕에 자리 잡고 전업 화가로 활동하면서 개인전도 여러 번 열었다. 많은 베트남 참전용사와 마찬가지로 바버라도 자신이 베트남에서 간호장교였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살았다. 2010년대 들어서 그녀가 베트남 참전 간호사였음이 미술계에도 알려져서 바버라는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자기 자식은 군대에 보내지 않는 정치인들이 전쟁을 결정한다면서 세태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징병제는 필요하며, 자신과 자기 오빠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는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
25살이란 젊은 나이에 베트남에서 숨진 토머스 치미넬로 중위에 대해 고등학교 친구는 이런 추모의 말을 남겼다.
25 Aug 2002
Tom, After 35 years I still miss you every day.
As my best friend during high school you remain always in my thoughts and prayers.
Barry Holland
Colonel, US Army
- 사진 (1) : 베트남 나트랑 이송병원에서 치미넬로 남매.
- 사진 (2) : 노년의 화가 바버라 치미넬로.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