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울법대 : 김증한과 곽윤직

작성일 : 2024-12-22 21:19조회 : 35

서울법대 : 김증한과 곽윤직

나는 1970년에 서울법대에 입학해서 1974년에 졸업했다. 1학년은 교양과정으로 공릉동 캠퍼스에서 의예과만 제외한 모든 서울대 학생들이 같이 공부를 했다. 법대와 상대는 LB반으로 묶어서 분반을 했고 나는 LB4반으로 법대생과 상대생이 절반씩 섞여 있었다. 다른 LB 반에는 정몽준이 있었는데 묵묵한 표정이었다고 기억된다.

1971년에 2학년이 되자 동숭동 법대 캠퍼스에서 비로소 공부를 하게 됐다. 법대는 법학과가 100명, 행정학과가 60명인데, 행정학과라고 해야 행정학이 필수과목이고 선택과목에 재정학과 조사방법론이 있었을 뿐이고 다른 기본 법학과목은 모두 필수과목이었다. 그 대신 법학과는 법철학, 친족상속법이 필수였던 것이 행정학과와 달랐다. 법학과는 법A반과 법B반으로 갈려 있었는데, 성(姓)을 가나다 순으로 A반과 B반으로 갈랐다. 유(劉)씨부터 법B반이어서 나는 법B반이었다. 나와 같은 법B반에는 국무총리가 되는 이낙연과 국회부의장이 되는 이주영, 법무부에 오래 있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잠시 지내는 홍경식, 외교부에 들어가서 대사를 지낸 이호진, 국회의원과 강원 카지노 사장을 지낸 함승희가 있었다. 법A반에는 풀무원을 굴지의 식품회사로 키워낸 남승우, 대법관을 지낸 양창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해 4월부터 정부의 대학 군사훈련(교련)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시위가 서울대 고대 등지에서 심하게 열렸다.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 그리고 상대에선 이를 군사독재 강화와 영구 집권 음모로 보고 유인물을 돌리는 등 그 강도가 심상치 않았다. 결국 정부는 대학에 대해 휴교령을 내렸고 대학은 폐쇄되어서 그날부터 놀고 말았다. 고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은 책을 싸 갖고 서울 근교의 산사(山寺)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나는 TIME지로 베트남 전쟁 등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가면서 여유롭게 놀았다. 휴교령이 끝나고 학교에 복귀하자 한 학기가 거의 끝나가서 한학기 중 공부를 한 기간은 절반 정도였다.

법대 2학년 1학기 과목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민법총칙인데, 법A반은 김증한 교수, 법B반은 곽윤직 교수가 그리고 행정학과는 최종길 교수가 담당했다. 세 분 교수는 독일어를 모두 탁월하게 잘하셨다. 당시 민법 교과서를 채권각론까지 펴낸 곽윤직 교수는 강의도 탁월했으나 시험문제를 어렵게 내고 성적이 박(薄)하기로 유명했다. 곽 교수 민법에서 B 이상을 받으면 사법시험에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수강생 절반이 D나 F였으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김증한 (金曾漢 1920~1988)

김증한 교수는 1920년에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건국 초에 대법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김익진(金翼鎭 1896~1970)이다. 검찰총장으로서 김익진은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무시하고 정치사범을 기소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김구 암살에 이승만이 연루되어 있다는 증언을 남겼다. 타고난 수재인 김증한은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하여 1944년에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임강사에 채용되었고, 1960년 문교부 고등교육국 국장으로 잠시 근무했고 다시 서울 법대 교수로 복귀한 후 1985년까지 재직하면서 민법과 서양법제사 등을 담당했다. 1967년 8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舊制)를 취득했다.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문교부 차관을 역임하였고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법과대학장, 1983년부터 1985년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서울대 은퇴 후에 동아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내다가 간암으로 1988년 10월 사망했다. 김증한 교수는 1956~57년 동안 미국 루이지애나 툴레인 대학(Tulane University)에 미국 정부 초청으로 교환학자로 그곳의 저명한 비교법 교수인 퍼디난드 스톤(Ferdinand Fairfax Stone 1908~1989)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김증한 교수는 일본의 민법 교과서에 입각해서 우리 민법 교과서를 최초로 완간(完刊)했다. 또한 김증한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어 부교재를 펴내서 1950~60년대에 서울대 입시를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이 그 책으로 독일어를 공부했다. 김증한 교수는 민사법학회 회장, 한독법률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김증한 교수의 동생 김흥한(金興漢, 1924~2004)은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로펌인 '김장리(Kim, Chang & Lee)'를 설립해서 국제 법무를 개척했다. 194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서울지방법원 판사를 지내다가 1954년 미국 유학을 떠나 4년 후 귀국해서 로펌을 설립했다. 김장리는 1970년대 들어서 김영무 변호사가 김앤장을 세우기 전까지 국제업무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김흥한 변호사는 국회의원을 오래지내고 4.19 후 민주당 정부에서 외무부장관을 지낸 정일형(鄭一亨 1904~1982) 박사의 큰 사위이다. 민주당 정부에서 김흥한은 장면(張勉 1899~1966) 국무총리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따라서 민주당 정부 시절에 김흥한은 국무총리 비서실장이면서 외무부장관의 사위였다. 김흥한 변호사는 정대철 헌정회장의 매형이고 이태영 변호사의 큰 사위이다.

김증한 교수님은 나와는 깊은 인연이 있다. 내가 1974년에 법대를 졸업할 때, 그리고 1976년 2월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취득할 때 법대 학장이셨다. 1974년 2월 26일 대학 졸업식 후 서울대 의대병원 구역에 있는 회관에서 사은회가 있었다. 사은회 행사를 마치고 몇몇 학우들이 김증한 학장님과 교수님 몇 분을 모시고 무교동 맥주 집으로 2차를 갔다. 김증한 교수님 바로 옆에 내가 앉아 있었는데, 교수님은 맥주잔을 기울이시면서 “동료 교수(최종길)가 죽어도 말 한마디 못하는 세상”이라고 깊은 탄식을 하셨다. 10월 유신과 긴급조치로 이어진 그 시절의 암울한 단면(斷面)이었다.

대학원 2학년을 관악 캠퍼스에 보낼 때 나는 반년 동안 지도교수 김철수 교수님의 조수(助手)로 학교 일을 도운 적이 있다. 그 때 서울법대 소개 책자와 영문 뷸레틴을 만드는 작업을 해서 김증한 학장님은 나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셨다. 해군 복무를 마치고 당신이 1년 간 공부했던 Tulane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더니 무척 기뻐하시고 스톤 교수에게 안부를 전하라고 하셨다. 스톤 교수를 만나서 김증한 교수님 이야기를 전했더니 스톤 교수도 옛 추억에 잠기는 표정을 지으셨다. 1983년 가을에 은퇴하기 직전에 스톤 교수는 나의 박사학위 심사위원장을 지내셨다. 아마도 김증한 교수님의 음덕(陰德)으로 박사학위를 좀 더 빨리 받지 않았나 한다. 김증한 교수님은 내가 서울법대 교수가 되도록 힘써 주셨으나 당시 서울법대는 서울고-PK 라인이 주류(主流)여서 역부족이었고 나는 중앙대에 안착(安着)했다. 평소에 건강하셨던 김증한 교수님은 말년에 간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자택에서 임종하셨다. 나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다. 교수님은 나한테는 큰 스승이셨다.

곽윤직 (郭潤直 1925~2018)

곽윤직 교수는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서 경성법학전문학교에 입학해 선 공부라던 중 해방을 맞았다. 경성법전에 다니면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공부에 몰두했고 1947년에 국대안이 통과됨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진입해서 1951년에 5회로 졸업했다. 당시 국대안 문제로 혼란스러워서 졸업이 늦었고 6.25 전쟁 기간 동안은 통번역 장교로 근무했다. 졸업 후에 고등고시 행정과 3분(외무과)에 합격해서 공무원 생활을 잠시 했다. 1958년에 서울대 법대에 전임강사로 자리 잡았고 1959년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버지니아 대학교에 교환학자로 영미법을 연구했다. 1965년에는 서독 함부르크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했고 1968년에 서울대에서 법학박사(舊制) 학위를 받았다.

곽 교수는 김증한 교수에게 배운 제자이지만 독일법에 근거한 민법 교괴서를 출간하면서 김증한 교수의 학설을 배격해서 당시 학생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는 동시에 치열한 학문의 세계를 느끼도록 했다. 2000년대 초까지 모든 법학도는 곽윤직 교수의 민법 교과서로 공부를 했다. 민법 교수들이 모인 민사법학회를 불신한 곽 교수는 1977년에 민사판례연구회를 만들어서 서울법대를 졸업한 우수한 법관과 법관 출신 법률가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민사판례연구회는 워낙 공부와 토론을 치열하게 해서 웬만한 수재가 아니면 접근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민사판례연구회는 법원 내의 엘리트 그룹으로 여겨지는 등 역작용을 초래했다. 우리법연구회는 이러한 민사판례연구회에 대한 역작용의 산물이었다.

여하튼 곽윤직 교수는 한국의 엘리트 법조인을 길러낸 탁월한 민법학자였으며 사생활도 전형적인 선비였다. 곽 교수는 교수 외에는 다른 직책을 맡지 않았다. 하지만 곽 교수는 서울법대 학장을 하고 싶었다. 곽 교수는 1984년에 서울법대 학장이 될 위치에 있었는데, 학장직은 법대 7회인 배재식 교수에게 돌아갔다. 배재식 교수 후임으로 학장이 된 사람이 이수성 교수다. 곽윤직 교수는 이수성 교수 등과 사이가 원만치 않았다. 김증한 교수는 고희(古稀)를 못 넘기고 타계했으나 곽윤직 교수는 9순(旬)을 넘기는 장수(長壽)를 누렸다.

2학년이던 1971년 1학기 민법총칙은 휴교령이 내리던 곽윤직 교수님이 반년 동안 독일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출국하셔서 우리는 김증한 교수님한테서 학점을 받았다 2학기에도 학생 시위 때문에 휴업령이 내려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민법 2부인 물권법은 김증한 교수님한테서 학점을 받았다. 1972년 3학년 1학기는 드물게 휴교령이 없이 한 학기 동안 공부를 했다. 한 학기가 그렇게 긴 줄은 정말 몰랐다. 민법 3부 채권법은 꼼짝없이 곽윤직 교수님한테 공부하고 시험을 보아야 했다, 나는 채권법 총론에서 D+를, 그리고 채권법 각론에서 C- 성적을 받는데 그쳤다. 나는 민법을 끝냈다는데 만족했다. 내가 70학번 법학과 100명 중 34등으로 졸업하게 된 데는 1학년 교양과목 성적이 나빴고 3학년 민법 성적이 나빴기 때문이었다. 3학년 때는 상법 3부인 어음수표법 공부가 지긋지긋했다. 도대체 구경도 한 적이 없는 약속어음, 환어음에 대해 공부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판사나 변호사가 될 수도 없고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비운의 최종길 교수

행정학과의 민법은 최종길(崔鍾吉 1931~1973) 교수가 담당했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독일 쾰른대학에서 민법으로 박사를 하고 귀국해서 1965년부터 서울법대 전임 교수가 되어 민법과 국제사법을 가르쳤다. 독일에서 일찍이 민법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독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석학과도 교류가 깊었다. 1973년 10월 19일 긴급조치가 선포되어 있던 와중에 최종길 교수는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간첩임을 자백하고 창문으로 뛰어 내려서 자살했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와 더불어서 유신 체제 하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이다. 민주화 후에 결국 최 교수는 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선 이미 많은 기사와 논문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참고 : 구제(舊制) 박사는 대학에서 박사학위가 없이 일정 기간 이상 교수직에 있던 경우에 박사학위 논문만 제출함으로써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로, 1976년 2월에 마지막 구제 박사가 나왔다. 서울대 법대에서 마지막으로 배출된 구제 박사는 나중에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를 지내게 되는 이수성 교수다.

사진 (1) : 김증한 교수 (1980년대)
사진 (2) : 곽윤직 교수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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