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5년 4월

작성일 : 2025-04-17 07:25조회 : 69

1975년 4월

올 4월은 4.19 65주년이 되는 달이다. 또한 인혁당 관련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50년이 되는 달이기도 하다. 4.19 당시 나는 지금 종로구청 자리에 있던 수송국민(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지금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던 경찰 무기고 건물 건너편 골목에 살았기 때문에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혁당 피고인들이 사형을 당한 1975년 4월에 나는 대학원 2년차로 논문준비에 바빴다.

대학 3학년 때인 1973년 가을에 10월 유신을 겪었고, 대학 4학년 가을에는 국가비상사태인지 뭔지 하는 조치가 있어서 학기가 중단된 채 졸업을 하게 됐는데, 그 초겨울에 민법을 담당하시던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 건물에서 “간첩임을 자백하고 투신자살”하는 일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동기생들은 뿔뿔이 헤어졌는데, 방위병으로 근무하거나 대학원에 적(籍)을 걸어 놓고 고시 공부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나처럼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1973년 가을은 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 쇼크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으니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가 거세지자 정부는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했다. 하지만 최종길 교수 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을 정부 발표대로 믿었던 법대생은 없었다. 1974년 가을 낙엽이 떨어질 무렵에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가 발생했다. 광고란이 백지로 나가자 시민들이 의견 광고를 내서 지면을 채우는 운동이 벌어졌으나 1975년 3월 들어서 회사측은 기자들을 대거 해고함으로써 정부와의 대립 상황을 풀었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동아일보가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해 보는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 기자 해직사태가 있고 얼마 후인 4월 8일 인혁당 최종 판결이 대법원에 나왔고 피고인 8명이 즉시 사형 집행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저런 조작 사건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설마 사형집행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특히 당시 법무장관이 황산덕 교수였으니 참담한 일이었다. 우리는 황산덕 교수가 쓴 형법과 법철학 책으로 공부를 했다. 5.16 후 군정 시절에 최고위를 비판하는 칼럼을 써서 옥고(獄苦)를 치르고 결국 서울법대 교수직을 물러난 황산덕 교수를 우리는 지식인의 귀감으로 생각했었다.

돌이켜 보면, 1974년에서 1975년 봄에 이르는 기간 중 박정희 정부는 정권 유지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1975년 들어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4월 12일, 당시 크메르 공화국이라고 불렸던 캄보디아 주재 미국 대사관이 철수했고 얼마 후 크메르 루지 공산군이 프놈펜을 장악했다. 베트남에서도 북베트남군이 3월 들어 총공세를 가하더니 중부 산악지대와 후에와 다낭을 장악했고 4월 30일에는 사이공이 공산군 수중에 들어갔다. 프놈펜 대사관에 걸려있던 성조기를 말아 들고 헬기편으로 타일랜드에 도착한 존 딘 미국 대사와 미군 항모로 향하는 헬기를 타려고 옥상에 줄을 선 베트남 사람들을 찍은 사진은 그 시절의 상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공산화는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반대와 비판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말하자면 안보 정국이 조성된 것이다. 그리고 사우디 등 산유국 덕분에 중동 특수(特需)가 열리기 시작했다. 시중에 돈이 풀리기 시작했고 그 즈음 여의도 아파트 분양이 시작됐는데 당첨이 되면 그 자리에서 웃돈이 붇는 사태가 발생했다. 안보위기 의식과 호황 덕분에 박정희 정권은 1974~75년 위가를 넘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1975년 가을에 나는 논문을 끝내고 이듬해 2월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첫 졸업식에서 석사 가운을 입었다.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사진 (1) : 타일랜드 미군 기지에 헬기편으로 도착한 존 딘(John Gunther Dean 1926~2019) 프놈펜 주재 대사. 대사관에 계양했던 성조기를 왼 팔로 품고 있는 유명한 사진이다.
사진 (2) : 1975년 4월 29일. 미군 헬기를 타려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베트남 사람들. 흔히 미국 대사관 옥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사이공 시내에 있던 CIA 안가(安家, Safe House)의 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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