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풍'이 박근혜에게 요구하는 것 (시사IN)

작성일 : 2011-09-22 14:57조회 : 4,645

2011년 9월 24일자 <시사IN> 게재 시사에세이

‘안풍’이 박근혜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하겠다고 해 폭풍을 불러온 뒤 2주일 넘게 지났다. 안 교수는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박원순 변호사에게 넘겨주고 본래 위치로 돌아갔지만 그 충격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안철수 교수가 대통령을 하면 좋겠다는 여론은 식지 않고 있으니 ‘안풍(安風)’은 보통사건이 아니다.
안철수 교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하고자 한다고 할 때 그 소식은 정말 신선하게 들려왔다. 블룸버그 통신을 세운 성공한 기업인 마이클 블룸버그가 뉴욕시장으로 당선되어서 9-11 테러로 상처를 입은 뉴욕시를 번영하게 만들었듯이 안철수 교수도 좋은 서울시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안철수라면 토목공사하고 정치평론하는 유치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했다.
안 교수의 멘토로 소개된 윤여준 전 장관이 창당설을 흘리자 안 교수가 이를 부인하고 나섰고, 진보 매체엔 윤 전 장관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안 교수는 윤 전 장관의 발언을 부인했고, 이명박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 사안은 여기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본인은 평상생활로 복귀했음에도 여론조사와 소셜웹에서 그에 대한 열광은 식지 않고, 안 교수의 고향인 부산에선 거리 민심에서도 ‘안철수 대통령’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안풍’은 기성 정치권의 무기력이 만들어 낸 일과성 현상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안풍’은 실체가 있으며 정치권에 이미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어느 해석이 맞든 간에 ‘안풍’은 이명박 정권의 대실정(大失政)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무력함에 대한 절망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으로 민심은 악화될 만큼 악화되었지만 이렇다 할 견제 장치가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민주당은 국민에게 감동과 신뢰를 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새로운 정치를 보여 줄 것 같았던 박근혜 전 대표는 지루한 침묵으로 일관 중이다. 연좌와 농성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으면서 통합을 하네 마네하면서 지루한 샅바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진보 정당의 행보도 답답하고 한심하기는 매일반이다. 이런 여러 현상이 ‘안풍’을 초래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안철수 교수가 대뜸 강력한 대통령 후보로 대두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2008년 5-6월에 있었던 ‘촛불 시위’를 떠올리게 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싸고 시작된 작은 집회가 전대미문의 촛불시위 사태로 발전한데 대해 정치· 사회 평론가들이 가지각색 해석을 내놓았지만 어느 누구도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촛불 현상을 해석하다가 지친 이들은 “촛불은 그냥 촛불일 뿐‘이라는 해석을 내리고 더 이상의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었는데, 이제는 “‘안풍’은 그냥 ‘안풍’일 뿐‘이라는 말이 나올 판국이다.
아무리 ‘촛불’과 ‘안풍’이 닮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촛불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촛불’은 정권 초기에 일어났고,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서 촛불을 틀어막는데 성공했다. 촛불을 계기로 보수 신문은 스스로 정권과 한 배를 탔고, 정권은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미디어법 변칙통과, 세종시 수정 시도, 4대강 사업 등 이 정권의 파괴적 광기를 들자면 끝이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도무지 견제할 방도가 없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물론 그래도 할 말을 하는 매체가 있고 소식을 전달하는 소셜웹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하나 해결을 하지 못한 채 달력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안풍’은 정권말기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촛불’과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리 지독한 정권이라도 숨 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셈이다. 따라서 관심은 역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다.
손 대표가 ‘안풍’이 담고 있는 코드를 읽어내고 민주당을 이끌고 간다면 민주당은 ‘안철수 쇼크’를 극복할 것이다. ‘안풍’은 박근혜 전 대표에게 더 어려운 결정을 하도록 요구한다. ‘안풍’에 휘청거리는 한나라당호(號)를 구하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서든가, 아니면 ‘안풍’을 기회로 MB 세력과 아예 선을 긋고 홀로서기를 하든가 양단간에 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심은 박 전 대표의 몫이지만, ‘안풍’에 담겨있는 코드 중 중요한 것이 ‘정의를 향한 대중의 열망’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안풍’을 그저 ‘현상’으로만 바라 봐서는 안 되는 것도 그것이 담고 있는 이러한 함의(含意)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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