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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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평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주간경향)
작성일 : 2012-10-29 09:12조회 : 3,743
주간경향 2012년 10월 23일자 (997호)
[북리뷰] 헌법 제정에 미 군정의 역할은2012 10/23ㅣ주간경향 997호
2012 10/23ㅣ주간경향 997호
주간경향 2012년 10월 23일자
[북리뷰] 헌법 제정에 미 군정의 역할은2012 10/23ㅣ주간경향 997호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서희경 지음·창비·3만3000원
필자가 1970년대에 대학에서 헌법을 공부할 때 우리 제헌헌법의 제정 배경은 교과서의 한두 페이지에서 간단하게 배우는 데 그쳤다. 유진오 박사가 만든 내각제 헌법 초안이 하루 만에 이승만 박사의 몽니로 대통령제로 바뀌었고, 당시 절박했던 토지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재산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들어갔다는 정도의 초보적 지식을 배웠을 뿐이다.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필자는 미국 헌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많은 책과 논문을 읽었는데, 헌법을 둘러싼 많은 논쟁에 있어서 헌법 제정자의 의도가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이 인상 깊었다. 필자는 라울 버거, 켈리 헤이비슨 같은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쓴 헌법사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나라에선 헌법 연구가 법학자의 전유물이었던 탓에 헌법사에 관한 연구가 미진했다. 제헌헌법의 배경이나 구한말에 있었던 공화제 논의 같은 주제가 법학자의 연구대상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학자나 역사학자가 이런 분야를 깊이 연구하지도 않았다.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가 펴낸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은 그런 점에서 무척 반갑다. 책은 우리나라 헌법의 뿌리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단순히 헌법 제정을 둘러싼 논쟁만 다룬 것이 아니라, 헌법 문제를 둘러싼 해방정국에서의 좌우간의 대립, 미 군정과 국내 정치세력 간의 갈등을 통해 치열했던 당시의 정치상황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우리나라가 민주공화제로 이행한 것은 1898년 만민공동회가 그 시작이라고 본다. 만민공동회는 ‘헌의(獻議) 6조’를 의결해서 군민공치적(君民共治的) 군주제를 제안했다. 백성들의 기세에 눌린 고종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곧 이어 무력으로 이 운동을 탄압했다. 저자는 우리 헌법의 원형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제헌헌법’이라고 부르는 1948년 헌법을 ‘건국헌법’이라고 지칭하는데, 건국헌법에는 임시정부 헌법이 녹아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저자는 ‘한국 헌법의 아버지’는 흔히 생각하듯이 유진오가 아니라 조소앙이라고 주장한다. 조소앙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건국과정에서 근대한국의 헌법을 가장 깊이 있게 성찰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1948년 헌법 제정에 있어서 미 군정이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했나 하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인데, 저자는 미 군정 사법부장을 역임한 에머리 우들이 기초한 ‘조선 헌법’은 헌법과 정부 형태를 논의하던 남한의 정치지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저자는 해방정국에서의 이른바 ‘우파 헌법’ 제정에서도 신익희가 주도한 행정연구위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신익희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고등문관 출신의 경험있는 법률전문가들을 모아서 행정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가 ‘한국 헌법’을 비밀리에 기초했고, 이 초안이 유진오의 초안과 합해져서 ‘행정위원회-유진오 공동안’이 되어 1948년 건국헌법 탄생에 직접 기여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책은 해방 후 남한에서의 우파, 좌파, 좌우 협상파가 서로 치열하게 다투면서 나름대로 헌법을 구상했음을 잘 보여준다. 좌우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남한의 한민당 계열 정치인과 이승만 박사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으며, 일제 강점기의 법률전문가들이 주축이 된 전문가 그룹이 기초한 헌법 초안을 토대로 이들이 우리나라 헌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제정된 헌법이 토지 소유와 재산권에 대해선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많이 갖고 있었다는 점은 경이롭다. 책은 또한 해방정국에서 미 군정이 보여준 다양한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 이상돈 교수는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북리뷰’ 연재를 마칩니다.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상돈 교수 <중앙대 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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