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
2020-08-01 08:58 10 이상돈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 중 섹스 스캔들이 가장 많았던 경우는 단연코 존 F. 케네디였다. 대통령 되기 전은 물론이고 백악관에서도 여자 관계가 많았다. 상원의원 시절에 쿠바의 아바나로 휴가를 가면 으례히 마피아가 운영하는 카지노 호텔에 묵으면서 쾌락을 즐겼다. 1960년 대선에서 카스트로에 넘어간 쿠바를 다시 해방하겠다고 공약하고 실제로 피그스 만 침공을 하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이 있었다.

그 다음으론 클린턴이라고 하겠다. 주지사 시절 행각은 여직원 폴라 존스의 폭로로 널리 알려졌다. 백악관에 들어간 후에는 답답하게 갖혀 있다가 젊고 육감적인 여자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를 보고 불이 붙어 버린 것이 탄핵 소추까지 발전했다. 그래서 클린턴은 케네디에 비하면 자기는 너무 억울하다고 투덜거렸다.

클린턴은 르윈스키한테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힐러리와 헤어 질 거라고 말했다는데, 르윈스키는 클린턴이 임기가 끝난 후와 자기와 결혼할 것으로 알고 그걸 자기 엄마한테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우리 애가 이런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 만나는 사람마다 하고 다녔는데, 클린턴이 로스쿨 다닐 시절의 걸 프렌드가 당시 백악관의 무슨 보좌관이었는데,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르윈스키 엄마한테서 듣고 이런 말이 돌아다닌다고 백악관에서 이야기해서 알려지게 됐다.

이에 비한다면 조지 H.W. 부시와 제니퍼 핏츠제럴드와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보스와 비서간의 관계다. 하지만 베이징 대사관, CIA, 부통령실로 오랫동안 따라 다녀서 온갖 억측을 자아낸 것이다. 부시가 부통령일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포됐었다.

레이건 대통령 임기 초였는데, 워싱턴의 어떤 식당에서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과 제임스 베이커 백악관 비서실장이 저녁을 같이 하다가 베이커 실장이 휴대전화를 받고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나가더니 20분쯤 후에 돌아와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식사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부시 부통령이 제니퍼를 옆좌석에 태우고 손수 차를 운전하다가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다는데, 부시가 베이커한테 연락해서 백악관 경호실 차량들이 급히 출동해서 경찰과 언론이 오기 전에 상황을 수습했다는 이야기이다. 부시가 경호원를 따돌리고 저녁에 제니퍼와 데이트를 하다가 이런 일이 생겼다는 데, 그럴싸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 소문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부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제니퍼를 자기 비서로 백악관으로 데려 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니퍼와 관련된 소문을 뒤치닥거리 하는데 지친 제임스 베이커와 참모들이 부시한테 그러면 우리는 모두 집에 갈테니까 당신하고 제니퍼하고 잘 해보라고 최후통첩을 해서 부시는 할 수 없이 제니퍼를 국무부로 귀양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확인된 바는 없지만 일단 그럴싸하게 들린다.

텍사스 출신 변호사인 제임스 베이커 James Baker는 부시의 1980년 공화당 예비선거를 도왔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과 재무장관을 지냈다. 그가 재무장관을 지낼 때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의 재무장관과 만나 엔화를 평가절상하는 플라자 합의를 아루어 냈다. 그 덕분에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반면에 우리나라 수출이 폭증해서 우리 경제가 도약을 하게 됐다.

베이커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내면서 소련 붕괴와 동유럽 공산권 와해, 걸프 전쟁 등 격변하는 위기를 슬기롭게 넘기면서 미국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부시가 임명한 칼라 힐스 Carla Hills 통상대표부 대표는 WTO 협상과 NAFTA 협상을 매듭지었다. 물론 이는 부시 대통령 자신이 외교 안보 국제경제에 경험과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부시에게 제니퍼라는 여인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몇몇 단체장들에게서 일어난 사건과 비교도 해 보고...)

부시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한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 외교에 너무 치중해서 국내정치에 소홀히 했다. 둘째, 백악관 비서실장 존 수누누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는 국내 여론과 정세를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는커녕 전횡을 일삼았지만 부시는 그걸 잘 몰랐다. 보다 못한 아들 조지 W. 부시가 백악관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 비로서 부시는 수누누를 경질했다.

백악관 비서실에 진정으로 부시 대통령을 생각했던 비서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부시의 선거참모이던 리 애트워터 Lee Atwater가 젊은 나이에 악성뇌종양으로 갑자기 사망했는데, 부시는 그를 대신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애트워터는 죽기 직전에 1988년 대선에서 상대방이던 두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한테 네거티브 캠페인을 한데 대해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도저히 질 수 없었던 1992년 선거에서 실패한 부시가 백악관을 떠나면서 혹시 제니퍼가 옆에 있었다면 존 수누누의 전횡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최소한 제니퍼는 부시에게 충실한 게이트키퍼 gatekeeper 였으니까...

사진은 부통령 시절의 부시와 제니퍼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조지 H. W. 부시의 ‘오피스 와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