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노블레스 오블리주?
2020-09-11 09:18 16 이상돈

9월 2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조국 교수를 옹호하기 위해 펴낸 <조국 백서>에 이런 말이 나온 모양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는 못 미치지만 상류층 엘리트의 일반적 관행에 비추어서는 별 것이 아니다”는 식의 표현이....

거기서 말하는 “상류층의 일반적 관행”이 뭔지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게 있는지는 알고 있다는 식인 것 같다.

나는 언론에서 툭하면 사용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표현이 무척 거슬린다. 그걸 주제로 칼럼이나 사설을 쓰는 논설위원들을 나는 한심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10년 전에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아래 글에 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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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협회보 2010년 10월 4일자

[언론다시보기]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노블레스 오블리주

 
총리 등 고위공직에 거론되는 사람들이 석연치 않은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은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때 언론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프랑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귀족은 의무가 있다”는 뜻이니, “귀족은 솔선수범하고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구(舊)체제(앙시앵 레짐) 시절의 귀족은 베풀기는커녕 대중을 수탈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렇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는 반어적(反語的)으로 쓰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언론이 병역과 관련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할 때 자주 드는 예는 존 F 케네디다. 허리가 나빠서 군대를 안 갈 수 있었는데,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무리를 해서 해군에 입대해 남태평양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지도층의 공적 의무 회피를 질타하는 것이 그런 기사나 칼럼의 정해진 공식이다.

또한 하버드 등 미국의 명문대학에는 2차 대전 등 전쟁에서 전사한 재학생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면서 미국은 명문대학 학생들이 국방의 의무에 솔선수범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명문대 출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조(調)로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언론이 이런 기사를 쓸 자격이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얼마 전 어느 장관에 지명되었다가 위장전입 등 온갖 의혹으로 낙마한 인물이 언론계 출신이었으니 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들먹일 때 흔히 드는 케네디 가문의 경우도 생각해 볼 점이 많다. 주식투기와 밀주(密酒)로 일확천금을 챙긴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는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아들이 군복무를 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허리가 안 좋아서 육군 신체검사에 떨어졌던 존 F 케네디가 무리해서 해군장교로 임관이 된 것도 그런 측면이 컸다. 조지프 케네디의 큰아들은 유럽 상공에서 실험비행하던 전투기가 폭발하는 사고로 사망했고, 대형함정에 비해 안전할 줄 알고 연안 경비정을 탔던 존 F 케네디는 부상을 입었다. 전쟁은 케네디 가문을 피해가지 않았던 것이다.

히틀러와의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했던 유화파(宥和派)였던 조지프 케네디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갈 것이다. 존 F 케네디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와 에드워드 케네디의 병역기록은 형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하다. 보통사람의 경우라면 이들처럼 병역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케네디 가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면 케네디 가문이 병역을 자발적으로 이행해서 모범을 보였다고 말할 수 없다.

미국의 명문대학 학생들이 조국을 수호하는 데 모범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허구인 면이 많다. 미국은 전쟁에서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을 잘 기린다. 전쟁에서 사망한 재학생을 기리는 기념비는 명문 사립대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립대학에도 있다. 웬만한 도시에는 전몰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데, 작은 마을에는 전쟁에 참가한 그 마을 출신의 이름을 모두 적어 놓은 기념탑도 있다. 2차 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소대장의 전사율이 높았고, 그런 초급장교는 사관학교나 학군단을 졸업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졸 전사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차 대전 중 노르망디 해안과 태평양의 많은 섬에서, 한국전쟁 중 낙동강과 장진호에서 산화한 미군 장병들의 대부분은 ‘농촌아이들(Farm Boys)’이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비겁한 파리지엔들은 고상한 문화도시 파리가 파괴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치 군대에 항복했지만 그런 파리를 나치로부터 해방시킨 미군 장병들의 대부분은 파리는커녕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도 가보지 못한 시골뜨기들이었다. 베트남 전쟁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과 로스쿨을 다니면서 병역을 면제받거나 그러는 사이에 전쟁이 끝나버려서 딕 체니, 빌 클린턴, 루디 줄리아니는 베트남에 가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갈 데가 없던 아이들은 정글 속에서 피를 흘렸다.

우리 언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할 때 그들은 잘못된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고위공직자와 사회지도층에 대해 절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보통사람들이 하는 만큼도 하지 않은 위선자들이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www.journalist.or.kr/news/article.html?no=2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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