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결선투표

작성일 : 2021-01-28 16:40조회 : 1,470

결선투표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단일화’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도무지 응답률도 얼마 되지 않는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선거제도와 정당 제도를 희화화하는 것이지만, 그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결선투표다. 실제로 대통령 결선투표는 꽤 많은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결선투표도 나름대로 부작용이 있다.

결선투표를 하는 대표적 국가는 프랑스이다. 1958년 개헌으로 채택된 프랑스 5공 헌법은 약 8만 명의 선출직 공직자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토록 했다. 이런 간접선거로 드골이 당선됐는데, 우리나라 유신 헌법이 이것을 적당히 베껴서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했다. 프랑스는 1962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을 하면서 결선투표를 도입했다. 결선투표를 하게 되면 정당 공천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다당제를 촉진하게 된다. 그래서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500명 이상의 선출직 공직자들의 추천이 있어야 대선에 출마할 수 있게 했다.

프랑스의 결선투표는 우파의 분열로 좌파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려가 있었다. 실제로 1974년 대선에서 1차 투표에선 사회당의 미테랑이 1위를 하고 우파 후보 지스카르 데스탱이 2위를 했으나. 2차 투표에선 데스탱이 다른 우파 후보의 지지로 당선됐다. 1981년 대선에선 1차 투표에서 현직 대통령 데스탱이 1위를 하고 미테랑이 2위를 했으나 3위를 한 자크 시라크가 데스탱을 지지하지 않아서 2차 투표에선 미테랑이 대통령이 됐다. 1995년 대선에선 1차 투표에선 조스팽이 1등을 했으나 2차 투표에선 시라크가 당선됐다. 결선투표가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장점 못지않게 정파 상호간의 이합집산을 부추기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선 새로 만든 정당의 후보인 마크롱이 24%, 극우 정당 후보인 마리 르펜이 21%, 기존 우파 정당 후보인 프랑소아 팔롱이 20%, 사회당 후보 발 루크 멜렌총이 19.6%를 얻었다. 2차 투표에선 사회당 지지자들이 할 수 없이 마크롱을 지지했고, 이에 힘입어 마크롱은 66%를 얻어서 33%를 얻은 극우 후보 르펜을 이기고 대통령이 됐다. 프랑스 정치도 우경화가 심해져서 이제는 극우세력이 1차 투표에서 20%대 득표로 1위 또는 2위를 해서 2차 투표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극단적 정치세력의 집권을 막을 장치로 생각됐던 결선투표가 이제는 그런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고, 또 처음에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운영되기도 하는데, 결선투표도 그러하다. 1987년에 제정된 우리 헌법은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를 상정하지 않았지만 헌법에 분명하게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프랑스도 개헌으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듯이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부의 조직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공수처도 도입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관위 같이 독자적 위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안철수의 뜻을 받들어서 별안간 대통령 선거를 결선투표로 하자는 법안을 제출했다. 나는 물론 그 법안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너무 우스워서 하지 않은 것이다. 선거제도 개정은 정치개혁특위 같은 절차를 거쳐서 논의하는 것이 정상이지, 한 정당 소속의원 30여명이 서명해서 의원입법안을 낸다고 될 것이 아닌데도 그런 법안을 날림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 때 나는 도대체 아이들 장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안철수는 새누리당은 해체되어야 하며, 친박은 폐족이고 공수처는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결선투표가 정책선거를 촉진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아무 것도 모르는 뜬금없는 헛소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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