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군법회의, 방위병

작성일 : 2021-06-23 07:36조회 : 1,551

군법회의, 방위병

우리 세대가 군대를 갈 시점이던 1970년대에는 현역자원이 남아서 방위병 제도가 있었다. 고도(高度)근시 등 신체기준 미달자, 또는 학력 미달자가 방위병으로 병역을 했다. 출퇴근으로 1년 동안 근무하는 방위병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드물게는 6개월 방위도 있었다. 2대 독자(獨子), 부선망(父先亡) 독자인 경우다. 그래서 자식이 없는 친척한테 양자로 들어가서 2대 독자로 6개월 방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동안 대권주자였던 사람도 그런 경우였다.) 방위병 제도는 내가 예비군에서 졸업을 하던 즈음(만 43세)에 없어져 버렸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석사장교 제도는 5공 실세들의 자식들이 병역을 편하게 마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내가 6, 7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석사장교 혜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석사장교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특혜 제도였다. 석사학위를 한 것이 그토록 훌륭한 재능이라면 군대에서 그런 재능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위병 제도가 없어진 후 산업체 대체근무라는 것이 생겼는데, 기강도 해이할 뿐더러 온갖 잡음이 많음은 아는 사람은 아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엄정하게 세워놓은 병역 의무를 그 다음 정권들이 해이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70~80년대 이야기이다. 당시에 2년 6개월을 복무해야 하는 현역병은 1년 동안 출퇴근 근무를 하는 방위병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사정이 어려운 방위병도 많았다. 주로 저학력 방위병이었는데, 현역을 못갈 정도로 학교를 못 다닌 매우 어려운 경우였다. 그런 방위병에게 군 부대에 출퇴근하라고 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기도 했다. 그들에겐 부대에서 먹고 자는 현역병이 부러웠을 수도 있다.

우리 세대가 군 복무를 할 때는 군사법원이 아닌 군법회의가 있었다. (군법회의라고 하면 10.26 사건에 연루된 현역들이 사형을 선고받은 사건을 연상할 것이다.) 보통군법회의는 영관급 장교가 재판장이고 법무장교가 법무사로 참여한다. 검사 역할은 법무장교인 군 검찰관이 담당한다. 군법회의법은 피고인이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경우에 법률에 소양이 있는 일반장교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나 같이 법대를 졸업한 일반장교는 군법회의에서 국선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이 제도 덕분에 나는 군법회의에서 몇 차례 국선변호를 했다. 고위장교가 많은 본부에 법대를 나온 일반장교는 세 명이 있었는데. 그 나마 한명은 헌병감실 소속이라 국선변호를 할 수 없었다. 당시 군 검찰관은 나보다 서울법대 1년 선배였고, 군 법무사는 2년 선배였다. 처음 맡은 사건은 군 트럭 사고로 운전병이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구속 기소된 건이었다. 열심히 변론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법무사와 검찰관이 모두 나를 알아서인지 집행유예가 나와서 그는 부대로 복귀했다. 나머지 경우는 모두 방위병 군무이탈 사건이었다.

주말에 막노동을 하다가 월요일에 부대에 못나오고, 그러자 무서워서 도망을 다니다가 헌병대에 체포되는 등 빈곤 때문에 군무이탈을 한 경우였다. 군무이탈은 무거운 범죄라서 몇 달 동안 이탈하면 관용이 불가능했다.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가난 때문에 법정에 서게 된 방위병 피고인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멍하게 서서 징역형 판결을 듣고 헌병에 의해 끌려 나갔다. (당시 재판정에서 만났던 군 검찰관과 군 법무사는 누구누구라면 알만한 법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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