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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산기업과 탈레반이 이겼고, 미국은 패배했다(한겨례)
작성일 : 2021-09-02 10:24조회 : 102


한겨레 2021년 8월 28일자 기사

방산기업과 탈레반이 이겼고, 미국은 패배했다

등록 :2021-08-28 13:57수정 :2021-08-28 14:02

[한겨레S] 기획 1

- 아프간 ‘20년 전쟁’의 끝
-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서 패배
- 모병제 이후 반전 여론 사라지면서


(미국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다. 미국 정부와 군 수뇌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비판 속에 수행했던 20년 전쟁은 탈레반과 방산업체들의 승리로 끝났다는 비아냥이 터져나온다. 미국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을 전한다. 편집자)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미국의 패배로 끝이 났다. 2001년 9·11 테러 뒤,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가 시작한 아프간 전쟁은 테러의 온상인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을 섬멸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입성한 미군은 새 정부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지만,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자 탈레반은 다시 세력을 확장했다. 2005년부터 아프간 상황은 악화됐고, 미군 전사자도 급증했다. 소규모 기지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벌어진 아프간 전투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사이 부시 정부는 2011년 말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기로 결정했고, 이라크 전쟁은 별다른 소득이 없이 끝이 났다.

“거짓말로 유지해온 20년 전쟁”

2008년 대선에서 아프간 전쟁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선 뒤, 전투병력 3만명을 아프가니스탄에 증파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도 병력을 증강해서 적극적인 작전을 전개했지만, 연합군 사상자가 늘어나고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결국 나토 사령부는 2012년부터 아프간에서 철군을 결정했고, 오바마도 2014년까지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군은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는 병력만 남겨놓고 철수했지만, 그 뒤에도 여전히 전투를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9년 만인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고, 논란 끝에 미군을 2021년 5월1일까지 완전 철수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올해 8월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통치로 넘어갔다.

아프간 전쟁이 미국이 치른 ‘가장 긴 전쟁’(The Longest War)이 된 것은 미국 정부와 군 지휘부가 전쟁의 진실을 은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오랜 취재 끝에 곧 출간하는 <아프가니스탄 페이퍼: 전쟁의 숨겨진 역사>는 부시, 오바마, 트럼프 3개 행정부가 아프간 전쟁과 관련한 잘못된 결정을 계속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여론을 조작해 왔다고 주장해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오바마 정부의 대규모 병력 증강과 뒤이은 철수가 모두 실책이었으며, 트럼프 정부는 아프간에서 평화가 불가능함을 알고도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어서 전쟁이 끝나는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전쟁 실패에 대한 논쟁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군 수뇌부가 국민을 속여 가면서 전쟁을 지속한 덕분에 미국 방산업계는 전에 없는 호황을 누렸다. 미국의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지난 20년 동안 6배가 상승했는데, 보잉, 록히드마틴 등 5대 방산업체의 주가는 10배가 상승했다. 민간 항공기도 제작하는 보잉을 제외한 4개 방산업체는 매출의 대부분을 미국 정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 5개 업체의 규모를 고려한다면 지난 20년간 미국 주식시장 호황을 이들이 상당한 부분 이끌어온 셈이다.

그러면 어떻게 정부가 거짓말을 해가면서 오랫동안 전쟁을 할 수 있었냐는 질문에 마주치게 된다. 미국이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 뒤,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해서 국민들이 전쟁에 대해 무관심해진 탓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끈다. 반전(反戰) 운동으로 ‘홈 프런트’(국내 여론 전선)가 무너지면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징병제를 아예 폐지했다. 1991년 걸프전쟁은 미국이 모병제로 전환한 뒤 처음 치른 전쟁이었다. 2차 대전에 참전해서 전쟁의 참혹성을 알고 있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쟁을 신속하게 승리하고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아들 부시는 아버지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소모전으로 장기화시켰다.

테러와의 전쟁이 길어져서 전사자가 많이 나와도 모병제를 운영하고 있는 탓에 배우자, 자식, 부모를 전쟁터에 보낸 군인 가족들만이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됐다. 베트남 전쟁 당시 활발했던 반전 시위를 볼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 2010년 7월30일,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계곡 미군 사령부 인근에서 지뢰를 밟은 20대 부상병이 누워 있다. AP 연합뉴스)

“오바마·트럼프, 거짓말로 실체 감춰”
방산업체와 탈레반에 승리 안긴 꼴
젊은이 희생양 삼은 ‘미국의 패배’

아프간 전쟁터에서 본국으로 돌아온 장병들은 “우리가 아직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냐?”는 질문을 받고 난감해지기도 했다. 전쟁이 더 이상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한 이력이 있는 시민운동가 빌 에어스, 그리고 이라크·아프간 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작가 엘리엇 애커먼이 아프간 전쟁이 군인 가족들만이 관심을 갖는 전쟁이었다면서 모병제의 문제점을 똑같이 지적하고 있음은 흥미롭다.

아프간 전쟁을 그린 영화 <론 서바이버>는 테러와의 전쟁이 특수부대 장교와 부사관이 벌이는 영웅들의 전쟁이란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이미지’와 달리 아프간 산간 지역에서 싸운 미군 병사들은 대학을 가지 못한 젊은이들이었다. 손상된 가정에서 태어나서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낸 많은 젊은이가 탈출구를 찾아서 군에 입대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들에게 군대는 가정과 같은 역할을 했다. 상층부나 중산층 젊은이들과 달리 이들은 군대에서 비로소 동료를 만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아프간 전쟁에서 2400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으니 이런 계층의 젊은이들이 무거운 희생을 감당한 셈이다.

며칠 전 <유에스에이 투데이>에는 2006~2007년 아프간 동부 산간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전역한 뒤에 변호사가 된 스티븐 컨스의 기고문을 실었다. 친구가 전사하는 아픔을 겪은 그는 젊은 군인들이 보기에도 아프간 전쟁은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아프간 전쟁이 미국 사회의 극심한 ‘민간-군 디바이드’ 덕분에 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국민의 1%만이 군인이거나 군인 가족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전투를 하는 군인은 전체 군인의 10%에 불과함에도 미국은 이런 극소수 군인들에게 대외정책의 무거운 짐을 떠맡겼다는 것이다. 아프간 전쟁은 미국 방위산업과 탈레반의 승리였고, 미국한테는 패배였다고 그는 말한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에서 30여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미국의 헌법과 대통령제>, <시대를 걷다> 등을 썼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009491.html#csidx6ca2d0fdc4cdd928df482eec97e81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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