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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시카 린치 일병
작성일 : 2021-11-25 19:57조회 : 1,840
제시카 린치 일병
현장에 출동한 여자 경찰관이 ‘무서운 장면’을 보고 뛰쳐나간 사건이 논란 거리다. 이 사건을 보면서 이라크 전쟁 초기에 있었던 제시카 린치 일병 사건이 생각난다. 제시카 린치(Jessica Lynch 1983년 4월 생)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작은 시골 마을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시골이라서 쇼핑 몰에 구경을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키가 작은 소녀 제시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방문한 육군 모병관을 만나서 지원을 했다. 가정이 어려워서 대학은 어차피 갈수도 없고 시골에서 할 일도 없었던 제시카는 육군에 입대하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11 테러가 발생한 후 1주일 후에 입대한 그녀는 기본 훈련을 마치고 보급병 교육을 받고 배속됐다.
미국이 모병제로 전환한 후에 제시카 같은 여성들이 군에 입대했는데, 1991년 걸프 전쟁 때만해도 여군은 전선(戰線)에 나가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여군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여군도 전선에 투입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여권주의자들이 주장해 온 바였다. 이렇게 해서 9.11 테러 후 시작된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선 여군이 최전선에서 남자 군인과 함께 동등하게 전투를 치르게 됐다. 이런 경우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여자 군인이 적에게 포로로 잡혀서 성적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다. 실제로 1991년 걸프 전쟁 때 여자 군의관 소령이 이라크 군인들에 납치되어서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풀려난 적이 있었는데, 당사자는 1년 동안 이 사실을 숨겨오다가 나중에 밝혔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이스라엘은 여자 군인을 지상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중동 전쟁의 특성상 여군이 납치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2003년 3월 20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제시카가 배속된 육군 507 정비 중대는 앞서 나시리야로 침공한 미 육군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험비와 트레일러 등 차량 18대로 나시리야로 항하고 있었다. 쿠웨이트에서 출발한 차량 18대에 탑승한 대원 33명은 이틀 동안 강행군을 하던 중 3월 23일 이른 아침 길을 잘못 들어서 후세인 친위대인 페다인 민병대가 지키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공격을 받았다. 선두에 있던 6대가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서 10명이 전사했고, 7명은 이라크 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갔는데, 그 중 2명이 부상을 심하게 입었다. 나머지 16명은 후퇴해서 미군에 합류했다.
부상당한 채 포로가 된 두 명은 제시카 린치 일병과 로리 피스트와(Lori Piestewa) 일병인데, 피스트와는 포로로 잡힌 후 곧 사망했다. 호피 인디언 출신인 피스트와는 제시카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제시카가 탔던 험비에는 피스트와가 운전을 하고 4명이 동승했는데, RPG 폭발로 튕겨져 나가서 트레일러를 들이 받아서 남자 병사 3명은 사망했고, 포로로 잡힌 피스트와는 심한 부상으로 죽었고 제시카는 다리와 팔이 부서지고 척추가 부러진 상태로 포로가 됐다. 포로로 잡힌 다른 5명 중에는 흑인 여자 병사도 한명이 있었다.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큰 우려를 자아냈는데, 여군 3명이 실종되어서 특히 그러했다. 여군의 전투 투입에 반대해 온 사람들은 남녀가 똑같이 전사하고 포로가 되는 게 남녀평등이라고 비꼬았다.
4월 1일, 미군은 해군 실(SEAL) 팀, 육군 델타 포스와 레인저 부대, 그리고 해병대로 구성된 구조대를 동원한 대대적인 구출작전을 펴서 제시카가 있던 병원을 급습해서 제시카와 포로로 잡혀 있던 5명을 구조하고 미군 시신 11구를 수습했다. 국방부는 제시카 구조를 알리면서 특수 부대원들의 구조 작전 비디오를 공개하는 등 크게 선전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제시카 일병이 전투를 끝까지 하다가 포로 잡혔다고 보도했고(“She Was Fighting to the Death.”), 어느 신문은 제시카 린치를 ‘여자 람보’라고 지칭했다. 미국인들은 제시카 일병을 구해 온 특수부대의 구조 작전에 찬사를 보냈다. 제시카는 독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본국에 돌아와서 월터리드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고 그해 8월에 전역했다 고향에 돌아온 제시카는 전쟁 영웅으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후 제시카 린치 일병의 ‘무용담’이 꾸며낸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제시카 자신이 자기는 영웅이 아니고 단지 생존자일 뿐이라고 밝혔다. 제시카는 매복 기습을 당하자 너무 무서웠고 M-16 소총은 교착되어서(jammed) 총 한방 쏠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사막 기후 탓인지 당시 미군 총기는 고장이 많았다.) 다른 차량에 탔던 병사들은 반격 사격을 하면서 싸웠지만 제시카와 함께 험비에 탔던 5명은 충돌 충격으로 죽고 다쳤던 것이다.
제시카는 충격으로 한동안 의식이 없었고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깨어 보니까 병원이었다고 나중에 밝혔다. 제시카는 이라크 의사들이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영어로 이야기해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해서 그대로 응급 치료를 받으면서 버텼다. 이라크 의사가 제시카를 구급차에 태우고 미군에게 인계하려 했으나 미군은 구급차가 차량 테러를 시도하는 줄 알고 총격을 가해서 도로 병원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미군은 몇 가지 루트를 통해서 그 병원에 제시카가 있음을 알아내고 델타 포스까지 동원한 구출작전에 나섰다. 하지만 미군 구조대가 병원에 갔을 때는 페다엔 민병대는 이미 철수한 후였다. 제시카는 이라크 군인도 없는데 갑자기 미군 특수부대가 밀고 들어 왔다고 말했다. 나중에 현지를 취재한 미국 언론에 대해 이라크 병원에 있었던 의사와 간호사들은 자기들 병원은 부상당한 이라크 병사와 제시카를 똑같이 돌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제시카가 문제의 병원에 있다고 미군에 알려 준 사람은 모하메드라는 변호사였는데 그는 자기 부인이 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이라크 병사가 누어있는 제시카를 따귀를 때리는 등 학대하는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어서 미군을 찾아와서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이라크 군에 의해 보복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미 국무부는 이들에게 긴급하게 미국 영주권을 주어서 미국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제시카는 병원에서 이라크 군인을 본 적이 없고 따라서 이라크 군인이 자기를 때린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 병원 간호사들은 모하메드의 부인이 간호사로 일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모하메드의 이야기는 몇몇 미국 언론에 의해 무용담처럼 보도됐다.
제시카를 진찰한 미군 의료진은 제시카가 이라크 군인들에 의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제시카는 의식을 잃어서 알 수 없으며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병원의 의사들도 제시카가 성폭행 당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포로로 잡힌 미군 남자 군인들은 이라크 군인들에 의해 심하게 구타를 당했고 부사관 1명은 총살당했다. 하지만 제시카는 자기는 병원에서 잘 지냈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벌어진 교전에서 열심히 싸운 끝에 전사한 남자 장병들과 포로 잡혔던 장병 등 전투에 참여한 전원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제시카는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도 국방부가 거짓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이라크 전쟁 초기에 일어난 제시카 사건은 남녀 혼성 군대를 전선(戰線)에 내 보내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처럼 전투와 범죄현장에 여성을 투입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현실은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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