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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70년대 미국의 여성/흑인 장관
작성일 : 2022-02-01 08:35조회 : 299


1970년대 미국의 여성/흑인 장관


미국은 헌법 기구로서 내각(Cabinet)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부 장관과 백악관 비서실장, 안보보좌관, 예산실장, 유엔 주재 대사, CIA 국장, 그리고 무역대표(USTR)를 각료급이라고 부른다. 케네디 대통령은 자신의 내각에 여성과 흑인을 단 한명을 임명하지 않았다. 존슨도 여성을 각료로 기용하지 않았고, 자신의 임기 중 새로 만든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에 흑인인 로버트 위버(Robert Weaver 1907~1997)를 임명했다. 하버드에서 박사를 하고 루스벨트 행정부 시절부터 주택 정책에 간여해온 전문가인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각료였다.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할 때까지 5년 반 동안 단 한명의 여성이나 흑인을 각료급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닉슨이 사임한 후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Gerald Ford 1913~2006) 대통령도 흑인을 각료급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1975년 3월, 포드 대통령은 법무부 차관보이던 칼라 힐스(Carla Hills 1934~ )를 주택도시개발장관으로 임명했다. 힐스는 미국 역사상 세 번째 여성 장관이다. 스탠포드 대학과 예일 로스쿨을 나온 칼라 힐스는 유능한 변호사였고 그녀의 남편도 그러했다. (첫 여성 장관은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12년 동안 지낸 프랜시스 퍼킨스 Frances Perkins 1880~1965이고, 두 번째 여성 장관은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새로 생긴 보건교육후생부 장관을 지낸 오비타 허비 Ovetap Hobby 1905~1995였다.)

닉슨 대통령에 의해 법무부 부차관보로 기용된 칼라 힐스는 차관보로 승진한 후 얼마 후에 주택도시개발부(HUD) 장관이 됐는데, 청문 과정에서 주택과 도시 문제에 지식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무난하게 인준을 받았다. 주택도시개발장관으로서 그녀가 취한 가장 유명한 결정은 세인트 루이스 시의 골칫덩이였던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 공공주택단지를 폭파시켜서 없애 버린 일이다. 1956년에 세워진 프루이트 아이고 공공임대주택 단지는 흑인 빈민 게토로 전락해서 큰 문제였는데, 과감하게 해체해 버린 것이다.

포드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함에 따라 칼라 힐스는 다시 변호사 업무로 복귀했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칼라 힐스는 무역대표(USTR)로 임명돼서 4년 동안 우루과이 라운드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그리고 통상법 301조 협상을 마무리 짓게 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무역협상가로 평가될만한 그녀는 우리나라에도 지적재산권 등 현안문제 협상을 위해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다.

카터 대통령은 백인 여성 2명과 흑인 여성 1명, 그리고 흑인 남성 2명을 각료급으로 임명했다. 첫 내각 인사에서 기업인 출신으로 듀크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한 클라라 크레프스(Clara Kreps 1921~ 2010)를 상무장관에 임명하고, 조지워싱턴 로스쿨을 나온 패트리샤 해리스(Patricia Roberts Harris 1924~1985)를 주택도시개발장관에 임명했다. 흑인인 해리스는 최초의 흑인 여성 장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하워드 대학 교수 출신인 해리스는 존슨 대통령 시절에 룩셈부르크 주재 대사를 지냈다. 카터는 해리스를 임기 중에 보건/휴먼서비스 장관에 임명해서 해리스는 두 개 부처 장관을 한 흑인 여성 장관이란 기록도 갖게 됐다. 
 
카터는 임기 만료를 1년 앞두고 항소법원판사이던 셜리 허프스테들러(Shirley Hufstedler 1925~2016)를 새로 생긴 교육부 장관에 임명했다. 카터가 재선에 실패함에 따라 허프스테들러 장관은 1년 만에 물러나야 했으니 항소법원 판사를 그만 둔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당시 공화당은 교육부를 만드는데 반대했고,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대선에서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공약했지만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서 폐지할 수 없었다.
 
카터는 하워드 대학 출신인 흑인 민권운동가 앤드류 영(Andrew Young Jr. 1932~ )을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앤드류 영은 유엔에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외교관들과 자주 어울렸고 비외교적 언급으로 물의를 빚어서 경질되었고 흑인이며 직업외교관 출신인 도널드 맥헨리(Donald McHenry 1936~ )가 후임으로 임명됐다. 앤드루 영은 그 후 애틀랜타 시장을 지냈다.

- 사진(1) 주택도시개발장관 시절 칼라 힐스와 프루이트 아이고 폭파 장면
- 사진(2) 백악관 집무실에서 카터와 앤드류 영. 대외정책 참사를 초래한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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